![[프리즘]사상누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5/01/19/article_19161210825258.jpg)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정책 기반이 단단하지 못할 때도 사상누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정부는 최근 기요틴(단두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제개혁에 적극적이다. 규제개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역시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산업 곳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규제가 도마에 오른다. 당장 폐지가 요구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충분한 논의 없이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불필요한 규제로 인식, 폐지를 강요받는다.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대못 같은 규제는 즉각 폐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는 규제를 만든 취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금융정보시스템 해외 이전 승인 요구가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고시로 국내에서 법인 허가를 받아 금융업을 하려면 정보시스템을 국내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해외 이전에 따른 고객정보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 학회 세미나에서 대학교수가 이 규제를 개혁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한국씨티은행, 알리안츠생명 등 외국계 금융사가 주장한 내용이다. 핀테크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것이 이유다.
실상 이 규제는 고객정보 해외유출 우려뿐 아니라 국내 산업 보호 측면도 있다. 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은행은 국내 정보시스템을 본사나 아시아태평양본부가 있는 곳으로 시스템을 옮기려고 규제 개정을 수차례 요구했다. 비용절감과 운영효율화 때문이다.
정보시스템이 해외로 옮기면 해당 금융사는 더 이상 국내 정보기술(IT) 투자를 하지 않는다. 기존 국내 은행을 인수해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가 국내에서 수익만 올릴 뿐 투자는 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IT유지관리 수행 업체도 국내 업체에서 외국계 IT업체로 변경된다.
대부분 규제는 만들어지는 이유가 있다. 산업을 저해하는 배경이 될 때는 신설 당시 존재했던 이유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국 내 금융IT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고객정보 유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굳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규제개혁도 좋지만 규제 취지를 살리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도 필요하다. 자칫 하나의 트렌드처럼 추진하는 규제개혁이 사상누각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