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는가

[월요논단]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는가

세계적으로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운 유망 분야로 떠올랐다. 헬스케어 산업은 왜 중요한 것일까. 첫째, 기대수명이 높아진 초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느냐’, 즉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가 최대 화두가 됐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가장 유망한 성장엔진이라는 점이다.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5731억달러, 흑자규모 474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반도체는 우리나라 13대 수출 품목 중 가장 큰 액수인 약 627억달러를 차지해 세계시장의 15%를 점유했다. 우리나라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와 컴퓨터, 조선, 자동차, 철강 등의 수출량은 증가하지만 예년대비 수출증가율은 크게 둔화되고 있다.

한편, 세계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2년에만 5조달러에 달했고 향후 4년간 5.3%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IT산업 시장 규모보다 1.6배나 더 크다. 헬스케어 시장 점유율 5%만 달성해도 반도체나 자동차 이상으로 미래경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의학시대를 맞아 주요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 중 헬스케어 산업을 핵심 신사업 분야로 선정하지 않은 곳이 없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필두로 각종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바야흐로 건강 데이터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 엄청난 전쟁의 승리자는 유전자와 생활환경(life log)의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질병에 대한 빅데이터를 확보한 자(기업이나 나라)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진정한 개인 맞춤의학이자 예방의학이며 미래 의료의 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현재 각종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된 생체신호가 외국계 회사의 플랫폼을 통해 수집되고 있다. 일반인들의 유전자검사도 대부분 외국계 회사에 의해 행해진다.

즉 우리나라 사람의 유전자 데이터와 운동, 영양, 기후, 지역 등 모든 일상을 아우르는 생활환경 데이터(life log data)가 외국(외국계기업)에 쌓이고 있는 셈이다. 1879년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시행함으로써 서양 근대의학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된 이래 최근까지도 거의 모든 의료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선진 외국에 의존하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의료식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왔다.

유전체연구, IT, 나노기술 등이 융·복합 된 새로운 의료, 미래의료가 태동하는 현재도 우리는 각종 제도와 규제에 대한 국내 상황적 쟁점에만 묶여 한발자국도 못나간다.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창조해낼 수 없다면 21세기 미래의료 시대에도 의료식민지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아포리아(길 없음)’ 상태에 처한 것인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창조해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새로운 의학이 창조되고 있는 지금,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려는 지금이 미래의료의 선도자로서 위치를 선점할 기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기술 자체는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섰다. 유전체, IoT,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그렇고 의료정보시스템을 비롯한 IT도 최고 수준이다. 이들을 융합해 미래의료를 선도적으로 창조하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 헬스케어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분명 있지만 그 기회의 문이 오래 열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장 chulhee@su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