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 경제 버팀목이다. 완성차와 부품을 합하면 지난해 수출액이 756억달러에 달하고, 무역수지는 616억달러로 국가 전체 무역수지보다 30%나 많다. 즉 자동차 분야가 다른 분야 무역적자를 모두 메우고도 흑자를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또 30만명이 일하고 있고 간접부문까지 고려하면 180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대단하다. 생산대수 기준으로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2014년 452만대)이며, 현대·기아차도 도요타, 폴크스바겐, GM, 르노·닛산에 이어 세계 자동차 판매량에서 5위(2014년 800만대)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이후 겨우 미군용 차량을 뜯어 조립하기 시작한 나라가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선진국 업체들을 추격하며 긴장시키고 있으니 실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여건을 보면 위기라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공장은 더 이상 늘지 않고 생산설비만 보강되고 있으며, 외국계 회사로 바뀐 한국지엠, 르노삼성차, 쌍용자동차는 최근 들어서야 정상화 단계로 나가고 있다. 여기에 수입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물량 점유율 15%, 매출액 점유율 30%를 넘어선 반면, 국산 브랜드는 내수시장 방어에 급급하다. 이런 결과로 한국 자동차 생산량과 고용 지표는 수년 간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해외에 공장을 10개나 세워 수많은 일자리를 바깥에서 제공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는 늘지 않고 해외 생산만 증가한다면, FTA 효과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EU FTA처럼 역수입과 무역역조를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의 해외 탈출과 공동화 조짐은 기본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노동 및 환경규제 비용에 기인한다. 우리는 아직 세계 5위 수준의 경쟁력으로 중대형급인 제네시스 정도까지 겨우 따라온 지점에 있다.
앞으로 뛰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멀지만 근로자 평균연봉 수준이 1억원에 달하며 환경 규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설정돼 있다. 한국지엠의 경우, 지난 5년 간 인건비가 50% 이상 올랐다. 매년 임금 인상 이외에도 통상임금 등 노사 합의사항도 사법적 다툼을 통해 뒤집으며 인건비를 더 올리고 있다.
생산성 대비 인건비 수준이 세계 최고다. 생산유연성에 대비한 하도급제도(아웃소싱)도 위법이며, 신규 투자나 공정 변경도 노조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는 모두 협력적 노사관계로 변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만 적대적 노사관계 틀에 갇혀 있다.
이산화탄소(CO2) 감축도 매우 중요한 시대적 가치이지만 상업성과 산업 발전도 중요하다. 친환경차는 공공적으로는 좋지만, 가격은 높고 수요는 아직까지 적어 팔면 팔수록 손해인 것이 현실이다. 친환경차로 가야 하지만 국민소득 수준과 교통환경, 생활패턴, 에너지가격 변화 등에 따른 시장성도 고려돼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세계 30위인 우리나라의 환경규제가 경쟁국이자 훨씬 부자나라인 미국, 일본, 유럽보다 높으면 과연 어떤 차를 만들어 얼마에 판매하란 말인가. 이제 우리 자동차 산업 환경을 최대한 개선해 세계 1등을 향해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경영 전략의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
앞으로 나라 안에도 자동차 공장이 추가적으로 들어서 신규 고용창출과 무역흑자에 더 기여해야 한다. 그날을 위해 합리적인 노사관계와 우리 산업 수준과 조화되는 환경 정책의 패러다임이 먼저 정립돼야 할 것이다. 세계 5위 산업에는 1위가 아닌 5위에 걸맞은 규제가 적합하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과잉규제의 족쇄를 풀어야 할 시점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yonggeun21c@kam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