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프트웨어(SW) 시장이 다시 기회의 땅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독점적 위치를 지켰던 IBM·오라클·EMC(IOE) 등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을 배척하는 ‘취IOE(IOE를 벗어나자)’ 바람이 거세지면서 국산 SW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의 SW 독립 선언이 우리 SW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업 성공사례로 검증되면서 SW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토종 SW가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기업의 시장전략과 정부 지원정책이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IOE 벗어나자”…중국 안보전략으로 격상
지난 2008년 알리바바그룹이 유지보수 비용과 시스템 과부하 등을 문제 삼아 IBM 서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EMC 스토리지를 걷어내고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으로 전환하면서 주목받은 ‘취IOE’는 최근 중국의 국가안보전략으로 탈바꿈했다.
중국 정부가 SW 핵심기술을 국산화하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 감시 프로그램이 IBM과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의 취IOE 정책이 탄력을 받았다.
중국 금융감독위원회는 2019년까지 외산에 종속되지 않은 ‘안전한 시스템’을 75%까지 구현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고자 매년 IT 예산의 5% 이상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2020년까지 은행·군대·공공기관·공기업 IT 기반을 국산으로 전환하는 등 IT 인프라를 국가 안보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시동을 걸었던 취IOE 바람은 지난해 중국 SW 산업 현장으로 확산됐다. 정부와 금융권 등에 SW 국산화를 요구하는 공문이 내려오면서 중국은행과 건설은행 등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국산화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 최대 서버업체인 인스퍼정보와 동방통 등 국산화 관련 기업의 주가가 테마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중국시장에 진출한 한 SW업체 관계자는 “취IOE뿐만 아니라 운용체계(OS)도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려 독자 OS 개발이 한창”이라며 “특정 외산 벤더의 SW 종속 현상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SW 개발과 투자에 집중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취IOE 대안, 왜 한국산 SW를 찾나
중국의 SW 국산화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지만 성과가 바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SW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시장 문화를 감안하면 당장 고성능·고품질의 SW 제품이 태어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OS·DBMS·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미들웨어·애플리케이션성능관리(APM) 등 시스템 SW는 핵심기술과 오랜 개발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시장 진입이 어렵다.
티맥스소프트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독자적인 DBMS와 WAS 등 시스템 SW를 확보한 국가는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대부분 미국 중심 글로벌 벤더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OE에서는 벗어나야 하지만 자국에서 적절한 SW를 찾기 어려웠던 중국에 ‘한국SW’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됐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이미 OS를 제외한 핵심 시스템 SW를 상용화하고 오랫동안 시장을 공략해온 국내 기업의 경험과 노하우가 돋보였던 셈이다. 미국이나 일본과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으로서는 우리나라는 그나마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쉬운 국가였다. OS, DBMS와 관련한 중국과 우리나라 정부 및 학회의 지속적인 포럼 활동 등 협력 채널을 확보한 것도 한몫했다.
◇중국 ‘취IOE’ 반사이익 성과 속속 등장
지난해는 국산 SW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밑바탕을 그리는 한 해였다. 국내 대표 SW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자 현지 파트너 물색과 함께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중국 기업을 찾았다. 중국의 취IOE와 우리나라의 중국 시장 진출이 서로 이해관계를 함께하면서 협력 사업은 속도가 붙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티맥스소프트와 인스퍼정보의 합작회사 설립이다. 중국 1위 서버 공급업체인 인스퍼정보는 자사 솔루션에 IOE를 배제하려 티맥스의 DBMS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SW에서 벗어나려는 인스퍼와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티맥스가 합작회사를 만들어 취IOE 바람에 힘을 실었다. 티맥스 DBMS는 합작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크지만 티맥스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출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티맥스소프트 관계자는 “인스퍼정보는 하드웨어(HW)뿐만 아니라 DBMS 등 핵심 SW 분야에서 독점 타파 및 통합 시너지를 달성하려 SW 기술력을 갖춘 티맥스와 전략적으로 제휴한 것”이라며 “중국내 합작회사 설립으로 업계 구도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시스템 SW뿐만 아니라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IT 트렌드에 맞춘 SW 수요도 커졌다. 중국이 내수 시장을 키우는 수단으로 스마트시티를 꼽으면서 내재된 IoT 관련 솔루션 시장도 확대되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데이터스트림즈는 지난해 중국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인 ‘아이소프트스톤’과 함께 빅데이터·IoT 솔루션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성과를 이뤘다.
◇SW 관련 정부·기업, 중국진출 전략 바꿔야
지금까지 SW기업의 글로벌 진출은 해외 법인 설립이나 제품을 유통하기 위한 파트너 채널 구축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지원도 이에 맞춰 마케팅과 현지화 지원에 집중됐다. 그러나 중국을 공략하려면 취IOE 전략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관련 솔루션 공급뿐만 아니라 전문인력 교류, 기술개발 협력도 필수다. 티맥스가 인스퍼정보와 합작회사를 세워 중국 DBMS 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DB 관련학회와 업계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정보를 주고받은 것도 한몫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기적인 개발자 포럼과 업체 간 기술 교류, 영업 노하우 등을 공유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산 SW기업이 원하는 것과 중국의 수요가 일치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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