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분야에서 ‘퀀텀(Quantum)’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한다. 퀀텀은 통상 물리학·경제학에서 쓰는 단어다. 특정 현상이 천천히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뛰어오르듯 한 번에 비약하는 것(퀀텀 점프)을 뜻한다.
퀀텀 현상은 최근 미래 미디어 산업으로 떠오른 ‘초고화질(UHD) 방송’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국내 UHD 시장은 UHD TV, 곡면 TV, OLED TV, 퀀텀닷 TV 등 차세대 고화질 영상기술을 선보인 가전사가 선두에 서서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UHD 콘텐츠 제작 여건도 빠르게 개선돼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등장했다. 여기에 KT를 비롯한 네트워크 사업자의 기가망 구축 등 적극적 투자와 협력이 더해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시장조사업체 퓨처소스컨설팅은 오는 2018년 UHD TV 출하량이 1억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과거 고화질(HD) 시장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UHD 방송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관련 업계와 적극적 협력도 장려한다.
지난해 6월 일본 방송사업자와 가전업계가 연합한 ‘차세대방송추진포럼(NexTV-F)’이 추진한 UHD 실험방송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소니가 독보적 UHD 콘텐츠와 인프라 기술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스카이워스, 하이센스(Hisense), TCL 등 주요 가전사를 앞세워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맹추격하는 중국도 무서운 성장세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채널 CNBC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자본은 할리우드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무려 27억달러를 직접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중·일 3국이 무한경쟁으로 UHD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UHD 산업이 과거 3D 방송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지 하는 걱정도 든다.
3D 방송은 가전사, 제작사, 플랫폼 사업자가 ‘동상이몽’에 빠져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가전사는 3D 디스플레이 구현 기술 경쟁에만 몰두했다. 정부는 3D 콘텐츠 제작을 지원했지만 대부분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등장한 ‘스카이 3D채널’은 적자가 누적돼 사업에서 철수했다.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한 ‘콘텐츠-플랫폼-디바이스’ 3대 요소가 엇박자를 낸 셈이다.
UHD 산업이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선 경쟁력을 갖고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업계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UHD 산업 활성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차세대 방송발전전략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UHD 영상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와 가전사, TV홈쇼핑이 협력해 UHD 펀드도 조성했다.
플랫폼 사업자 KT스카이라이프는 지난해 6월 전국 커버리지 UHD 전문채널을 개국했다. 내 달 두 번째 UHD 전용 채널 ‘SKYUHD2’를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UHD 산업이 시장 경쟁력을 갖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 기술력 △안정적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 투자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이 조화를 이루면 현재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한류 콘텐츠 경쟁력이 차세대 UHD 영상 기술, 방송 플랫폼 양방향 커머스와 함께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콘텐츠 미디어 산업은 가전, 콘텐츠, 플랫폼, 정부가 유기적 순환 체계를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UHD를 계기로 세계 방송 시장에 퀀텀 점프하는 한국을 기대한다.
윤용필 KT스카이라이프 콘텐츠본부장 naphilyoon@skyl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