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노량진역에는 ‘30분 상권’이라는 특별한 경제지대가 있다. 1호선과 9호선 간 환승시간 30분 동안 간단한 요기를 하는 승객들이 만든 상권이다. 환승통로가 없어 역사 밖으로 나와 환승하는 이 역만의 독특한 체계가 만든 특수한 경제다.
위력은 컸다. 승객들은 환승 도중 노점, 편의점에서 허기를 해결했고 상인들은 이를 겨냥해 김밥, 컵밥, 스낵 등 30분 만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내놓았다. 정부도, 코레일도, 그 어느 누구도 만들지 않은 노량진만의 명물이 됐다.
시장경제가 만든 자생적 ‘창조경제’다.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는 시장경제의 생명력 덕에 ‘30분 특수’가 빚어졌다. 온 나라가 내수가 돌지 않는다고 걱정이지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어디든 있다는 걸 노량진은 증명했다.
전국에서 창조경제센터가 힘찬 출발을 했다. 삼성, 현대·기아차, LG 등 대기업 총수가 직접 대통령과 테이프 커팅을 한 큰 사업이다. 대기업의 노하우와 기술을 지역 중소기업과 공유해 창조경제를 이룬다는 게 골자다. 이렇게 지역기업이 자생력을 갖추면 국토 균형발전도 가능해진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걱정이다. CJ는 서울·수도권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세워 융·복합 콘텐츠 메카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 참여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영화등급물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콘텐츠 관련 기관들은 부산으로 이사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영화 만드는 회사가 서울에서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이를 관리·감독할 기관은 부산과 세종으로 흩어졌다.
충북에 터를 잡은 LG의 에너지·바이오도 마찬가지다. 한국전력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은 전남 나주를 비롯해 여러 지역으로 옮겨갔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등 바이오 관련 기관은 전북에 터를 잡았다. 야심차게 출발한 창조경제센터가 정권의 연속성 단절로 지역 간 시너지 동력을 잃을지 걱정이다.
노량진 30분 상권은 올해 환승통로가 개통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쉽지만 창조경제는 인위적인 힘 없이도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경제라는 교훈을 남겼다. 각 지역에서 야심차게 문을 연 창조경제센터들이 시장경제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서형석 전자자동차산업부 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