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신문에는 ‘가판’이란 게 있다. 내일자 아침 신문을 오늘 저녁에 미리 엿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과거에는 많은 신문이 오프라인 가판을 발행해 정부나 기업 관계자가 이를 사려고 저녁 때면 줄을 서고는 했다. 자신과 관련해 민감한 내용은 없는지 사전에 살펴보고 조치를 취하곤 했다. 지금은 온라인 가판에 밀려 오프라인 가판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가판을 통해 사전에 기사 내용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문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못된 내용이 널리 퍼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임에 틀림없다.
지난 12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 중고폰 선보상제에 대해 과징금 34억여원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고가요금제 가입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이용자를 차별했다는 점, 18개월 후 반납요건을 명확하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 이번 결정이 여느 때와 달랐던 점은 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봤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제도 자체는 소비자를 위해 좋지만 이통사가 운영을 잘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이 점이 여러 차례 지적됐다.
그렇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방통위도 인정했듯이 중고폰 선보상제는 18개월 후 중고폰 가격을 미리 받도록 함으로써 단말기 구입비용을 크게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만약 정부와 이통사가 사전에 교감해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만 고쳤더라면 소비자 통신부담을 덜어주는 훌륭한 제도가 될 뻔했다.
물론 중고폰 선보상제는 자율적 마케팅 활동이라 정부의 인가 및 신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이통사가 꼭 인가나 신고를 위해서만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 적극적인 사전 협의를 거쳐 법적인 문제는 없으면서도 소비자 편익은 높이는 서비스를 내놓으면 정부와 이통사, 국민 모두가 행복한 것 아닌가. 신문 가판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와 이통사가 사전에 교감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으면 한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