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팹리스, 희망가를 부르자

[데스크라인]팹리스, 희망가를 부르자

팹리스 업계가 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중증 환자 진단서 수준이다.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던 매출은 지난해 대폭 줄었고 수익은 적자로 돌아선 지 오래다. 상위 35개 기업 평균 매출도 3년째 500억원대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평균 순이익은 2년 전부터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실적 하락은 경영 악화로 이어져 대장주로 꼽히던 두 업체는 지난해 창업자가 지분을 넘기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유명세를 떨쳤던 한 기업은 업황 부진에 키코 사태까지 겹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지난해 상장 폐지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말 어렵사리 법정관리에서 졸업했지만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고 앞으로 먹거리 고민이 깊다.

잘나가던 기업도 허덕이니 소규모 팹리스 사정은 뻔하다. 정부 프로젝트로 근근이 버텨오던 작은 기업은 정부 지원이 줄어들어 신세 한탄만 늘었다. 10년 넘게 이어졌던 정부의 EDA 툴 지원도 올해 대폭 축소돼 부담이 커졌다. 내년에 복구를 기대하지만 정부 눈총이 싸늘하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팹리스 군단은 빠르게 성장했다. 최대 수요처인 중국서 경쟁해야 할 우리 기업 입지가 더 좁아들었다. “연명하는 수준”이라는 팹리스 업체 사장 푸념이 업계 현주소다.

바닥난 체력이 가장 큰 우려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선 이후 내세울 만한 전략 제품이 마땅치 않다. 인력도 부족해 새로운 아이템을 잡아도 힘을 쏟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손사래를 치고 있어 자금 마련도 녹록지 않은 상태다. 중국에서 값싼 칩을 들여다 모듈을 조립해 판매하는 명패만 팹리스인 기업도 늘고 있다.

희망은 이럴 때 필요하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고 경기가 어려워도 절망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여전히 기회는 있다. 사물인터넷이나 웨어러블, 지능형자동차 등은 팹리스에 신천지다. 새로운 땅에서 다시 일어날 때다. 5년, 10년 후를 바라보고 장거리 레이스에 나서야 한다. 부족한 체력은 힘을 합치면 길러진다. 해외 팹리스는 대규모 합종연횡으로 시장 장악력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우리 기업도 제휴를 통해 몸집을 키워 글로벌 기업과의 승부에서 승산을 높여야 한다. 인수합병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창업주는 미래 희망을 위해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

정부도 몸살 기운을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산업계에 새로운 자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자금 지원 방식을 선별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방법 중에 하나다. 업계 스스로 헤쳐 나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기술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해주고 인력도 함께 키워내야 한다.

수년간 반복된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기회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희망가를 부를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서동규 소재부품산업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