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에서 선불폰을 개통하는 데 무려 사흘이나 걸린다고 한다. 법무부 신원확인 절차에 그만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처리과정이 복잡하고 전산망 노후화로 일부 업무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일주일 안팎의 짧은 여행이나 비즈니스 방문자는 선불폰 사용을 엄두조차 못낸다. 이 때문에 당장 휴대폰이 필요한 외국인은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사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음성적으로 대포폰을 유통하는 업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1600만명 시대에 왠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외국인도 느린 개통 서비스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해외에서는 공항에서 곧바로 선불폰을 개통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전자정부 세계 1위’ ‘ICT 강국’ 등의 홍보 타이틀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ICT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부 데이터베이스(DB)만 개방되면 얼마든지 통신사업자가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통신사업자가 외국인 입국 DB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산체계를 갖춰주면 금세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 통신강국이자 ICT 대국에 온 외국인이 휴대폰 하나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휴대폰조차 못 쓰는 나라에 대한 첫인상이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인터넷이나 전화 통화가 안 돼 곤욕을 치러본 사람은 다시 그 나라를 가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정부가 최근 한류 활성화나 외국 관광객 유치와 같은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전략보다 이런 사소한 문제점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정보 개방을 슬로건으로 내건 ‘정부 3.0’도 가장 불편한 분야에서 먼저 시행돼야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