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다이어트 열풍’이 거세다. 차량 무게를 줄이기 위한 기술 혁신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기업평균연비(CAFE)와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강화하면서 연비 향상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20년까지 기업평균연비는 24.3㎞/ℓ,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은 97g/㎞로 강화될 예정이다. 연비 향상 및 배기가스 저감을 위해서는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기술 혁신도 필요하지만 차량 경량화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통상 차량 무게를 10% 줄이면 연비는 3.8% 높아지고 가속 성능은 8% 향상된다. 또 배기가스 저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알루미늄, 마그네슘, 플라스틱 등 경량 신소재를 차체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GM은 다음 달 뉴욕모터쇼에 공개할 캐딜락 대형 세단 신모델 ‘CT6’에 알루미늄을 포함한 경량 신소재를 적용해 차체 중량을 기존 철제 차체보다 90㎏ 줄였다고 밝혔다. 올 4분기부터 생산에 들어갈 CT6는 알루미늄 합금이 차체의 64%에 사용됐다. 또 12종에 이르는 경량 신소재도 함께 적용될 예정이다. GM은 이 같은 차량 경량화를 통해 연비 향상은 물론이고 충돌 시 탑승자 보호, 실내 소음 저감 효과까지 동시에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업계의 경량 소재 적용 확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가 프리미엄 차량에는 이미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소재가 보편화됐다. 고성능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 Z06’ 차체에는 55% 알루미늄과 36% 플라스틱이 적용됐다. 또 재규어 ‘F타입 쿠페’는 80%에 육박하는 알루미늄 소재가 사용됐다. 조만간 국내에도 출시될 BMW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스포츠카 ‘i8’에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과 알루미늄이 각각 60%, 20% 비율로 적용됐다. 각 브랜드가 최고 기술력을 결집한 프리미엄 모델에 경량 소재를 대거 적용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고가 프리미엄 차량 차체에 적용되는 철강 소재 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때도 있다”며 “알루미늄, 플라스틱, 마그네슘 등 가벼운 소재를 이용한 차체 경량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차량에 이어 중·고가 대량 판매 모델에도 경량 소재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포드는 주력 픽업 트럭인 ‘F-150’ 차체에 알루미늄 소재를 대거 적용해 이전 모델보다 중량을 300㎏ 이상 저감했다. 포드는 향후 모든 라인업에 알루미늄 소재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알루미늄은 비중이 2.7로 철의 35%에 불과하고 용융 온도가 660℃로 낮아 차량 경량화 소재로 가장 각광받고 있다. 특히 차체는 물론이고 범퍼와 엔진 실린더 블록 등 주요 부품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는 마그네슘은 비중이 1.74로 구조용 재료 중에서 가장 가볍다. 마그네슘 판재는 철강재 대비 60%, 알루미늄 대비 30%의 무게절감 효과가 있다. 또 진동 감쇄 및 전자파 차폐 특성, 열 및 전기 전도성이 우수한 특성을 가진다.
최근 포르쉐가 공개한 고성능 스포츠카 ‘911 GT3 RS’ 지붕(Roof)에는 마그네슘 판재가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911 GT3 RS는 정지 상태서 100㎞/h까지 3.3초 만에 도달하고 연비(유럽 기준)도 리터당 7.9㎞에 달해 주행 성능과 연비 향상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평가다. 이는 마그네슘 판재로 지붕 무게를 알루미늄 소재보다 30% 이상 줄이는 차량 경량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량 무게 중심이 낮아져 주행 안정성까지 높아진 것은 덤이다.
특히 양산차 외장재에 세계 최초로 적용된 이 마그네슘 판재는 포스코가 공급해 주목된다. 또 국내 완성차 업체인 르노삼성차도 지난해 출시한 ‘SM7 노바’에 마그네슘 판재를 내장재로 적용하는 등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하지만 마그네슘은 소재가 비싼데다 가격 변동이 심하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차량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 적용을 검토하고 있지만 마그네슘은 상대적으로 고가여서 적용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플라스틱은 설계 및 제조 유연성이 다른 경량 소재보다 좋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가공 방식에 따라 내구성이 향상되는 특성이 있어 자동차 부품 소재로 폭 넓게 사용된다. BMW가 전기동력차인 ‘i3’와 ‘i8’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대거 사용한 것은 주행거리 연장을 위해 차체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특히 BMW는 CFRP 제조 공정을 기존보다 절반 정도 줄인 공법을 자체 개발해 주목된다.
손영욱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그린카 PD는 “BMW는 모터, 배터리 등 전기동력차 파워트레인 기술과 함께 CFRP를 이용한 차체 경량화에도 경쟁 브랜드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나라도 차량 경량화 소재 및 제조 공법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