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골프채를 잡은 대통령에게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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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언젠가는 해야 할 '필드 친교'를 위해 8년 만에 골프장에 갔다고 한다. 가뜩이나 과제가 산적한 지금, 골프를 쳐야만(?) 하는 윤 대통령의 심경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골프 사랑은 유명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 운동 중에는 PGA 프로선수인 브라이언 디샘보와의 자선 라운드가 유튜브에 공개되기도 했다.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디샘보와 함께 베스트볼 방식으로 22언더파를 기록했다. 이날 그가 쓴 빨간 모자에는 선거 캐치프레이즈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선명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과 골프를 쳐야 하는 사람의 긴장감은 어떠할까. 오죽했으면 허겁지겁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가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벙커에서 벌러덩 넘어졌을까.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될 수도 있는 동반 라운딩을 준비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4시간 넘게 두 정상이 긴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골프채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트럼프와의 골프가 정말 중요할까. 경제 활력은 계속 떨어지고,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가 대책을 시의적절하게 내고 있는지도 의심이다. '괜찮다',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말로 언제까지 국민의 아우성을 외면할 것인가. 1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는 의·정 갈등을 비롯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4대 개혁도 실상은 한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이 정책 성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공무원들에게 '감언이설'이라도 사용하라는 말로 들린다. 지지율은 20% 아래로 떨어지고, 국정동력도 이미 꺼졌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영부인 문제와 일개 선거 브로커의 입에 놀아나야 하나. 지금 당장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치고, 국정동력을 다잡아야 할 때다. 트럼프는 취임도 하기 전에 '정부효율부'를 만들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수장에 지명했다. 부처 하나 없애지도, 만들지도 못하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그 유연함과 속도가 부러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와 여론 구도에서 협치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결국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정치로 풀어야 한다.

오랜 만에 골프채를 잡은 대통령에게 주제 넘지만 조언을 하나 드리고 싶다. 골프에서 중요한 것이야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얼라인먼트(타깃과의 정렬)'에 신경을 쓰시라는 것이다. 골프공이 아무리 잘 맞더라도 방향이 틀리면 허겁지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 더. 국정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국정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모든 정책이 일치하도록 조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일이다. 방향이 틀렸는데, 그대로 치겠다는 대통령의 얼라인먼트는 국민을 해저드에 빠뜨리는 짓이다.

양종석 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