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벤처창업 1세대답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초선(初選)이지만 국회에 입성한 벤처기업인 중 드물게 지역구(경기 성남 분당을) 출신 정치인이다. 벤처기업인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그는 국회에 들어오면서 한국판 실리콘밸리인 K밸리 조성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자기 묘비명을 써 놓았으며, 취미인 노래와 기타 연주 솜씨가 뛰어나 지난해 12월 대학시절 활동했던 동료들과 인드키를 결성, 1집 앨범을 냈다.
전 의원을 지난 4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547호실에서 만났다.
그가 건넨 명함 사진을 보니 지금보다 젊고 옷도 정장차림이 아니었다. “과거 사진이냐”고 물었더니 “2008년부터 사용하던 사진인데 자주 바꾸기가 귀찮아 그대로 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의 집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이 띈 게 벽에 걸린 대형 조감도였다. 그가 창조경제 새 모델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K밸리 조감도였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문화, 비즈니스가 융합한 상생과 협력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미래설계도다.
K밸리는 그의 야심작이다. 그는 분당과 판교 일대를 중심으로 주변 대학교, 연구기관, 성남 하이테크 단지, 죽전디지털밸리, 광교테크노밸리와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해 창조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려 한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K밸리 구상으로 시작했다.
“이달 비영리 K밸리재단법인을 설립한다. 2년 전부터 성남과 판교, 죽전을 연결하는 K밸리 조성을 준비했다. 매주 토요일 분당에 있는 한국도시가스공사 사옥에서 오후 2시부터 교수와 건축가, 디자인, 플랫폼 전문가 20명이 모임을 갖고 토론하며 방법을 모색했다. 지방 대학 교수도 참석한다. 공개세미나를 2회 열었고 전문가와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워크숍도 1박2일 했다.”
2013년 6월 11일 K밸리포럼 출범식에는 국회의원, 기업인, 지자체장, 대학총장을 포함해 300여명이 참석했다. 포럼에는 주변 대학과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주성엔지니어링과 같은 국내외 벤처기업 100여개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토요 모임은 비공개였나.
▲그동안은 비공개로 했다. 지난 2월 7일 오후 2시 분당 한국가스공사 1층 세미나실에서 처음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공개 방침을 밝힌 지 1주일 만에 150명 넘게 신청했다. 이날 비빔밥과 융합한 제조공장(fabrication)의 준말인 ‘B fab’과 디자인 사고 활용 사례를 세미나에서 소개했다.
-어떻게 K밸리를 구상했나.
▲판교 일대에는 다양한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다. 업체 대표를 만나면 한결같이 ‘사람 구하기 힘들다’며 인력난을 호소했다. 내로라하는 성공한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에서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니 처음엔 의아했다. K밸리 주변에 대학교만 19개다. 학생은 20만여명에 달한다. 요즘 청년층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가. 오죽하면 교회 헌금도 안 낸다고 한다. 인력난 원인을 분석해 보니 기업과 대학과 교류가 전무(全無)했다. 이 지역 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상호연계하고 협업하면 이 지역이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이 이들을 채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인력난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이게 K밸리 구상의 시작이다. 지리적 조건도 좋다. 인천공항이 40분대고 강남역은 15분대다. 배후에 동탄 신도시가 있고 인근에 죽전디지털단지와 광교테크노밸리가 있다.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하면 창조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할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성공한 배경은 대학 융합을 통해 기술을 혁신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제기업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K밸리재단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나.
▲K밸리 핵심가치는 자아실현과 공유다. UN보고서는 2030년이면 20억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현존하는 일자리 80%가 사라진다. 지금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일자리는 자급자족이다. 재단은 앞으로 외국 창업 생태계와 환경에 대한 벤치마킹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창업 플랫폼을 제시한다. 기존 산업체계 경계를 허물고 공동가치를 만들고 이익을 공유하는 산업을 육성하는 일에 주력한다. 랜드 마크 프로젝트로 새로운 자급자족 공동체 생태계인 선 빌리지(Sun village)를 만든다. 디자인 사고를 통해 혁신 콘텐츠와 프로그램도 개발, 보급한다.
-선 빌리지란 무엇인가.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어 한계비용을 최소화해 자급자족과 자아실현이 가능한 마을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그런 기반을 구축하자는 게 선 빌리지다. 의식주 해결에는 최소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자아실현에 치중하는 삶의 유형이다. 군인이 처음부터 군인인가. 훈련소를 나오고 군복을 입어서 군인이다. 선 빌리지라고 한 것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ICT와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과 같이 융합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인터넷을 연결해 세계 유수 대학 강의를 무크(mooc)시스템과 같은 온라인으로 듣고 3D프린터로 집을 짓을 수 있다. 원격의료, 재능기부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 라이프 사이클도 변화할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선 빌리지를 구현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사회통념상 낯설기도 하고 실제로 이런 공동체를 구현하려면 법이나 제도도 바꿔야 한다.
-창조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화두로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잘했다. 처음부터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정부가 창조경제 조감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과거 업무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만 있다.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는 지금 구체적으로 창조경제 조감도를 제시해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다. 재개발을 할 때 조감도를 내놓고 이해관계자 동참을 유도하듯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도 한국 미래도를 제시하고 국민 공감을 유도해야 한다.
-미래부가 그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지난 4월 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에 제안했다. 창조경제 조감도를 그리지 못하면 미래부 출범 의미가 없다. 내년에 미래부가 예산을 책정해 창조경제 조감도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건축을 하려면 우선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매년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면서 조감도를 그릴 예산 항목이 없어서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정부 업무프로세스를 바꿔야 창조경제가 성공한다. 지금은 정부에 조감도를 그리는 조직이나 설계사가 없다. 이건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는데 악보가 없고 지휘자가 없는 형국이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계속 새로운 연주자만 뽑는 것이나 같다.
-국회 산하에 미래연구원을 구성할 필요가 있나.
▲국회에 핀란드와 같은 미래연구원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국회에 Sitra라는 미래연구원을 구성해 운영한다. 내각제여서 위원들이 내각에 들어가 일을 한다. 장기 국정과제를 연구하는데 내각 임기 중 최소 한 번 이상 국정과제 보고서를 제출한다. 국정과제를 다루면서 펀드에 투자도 한다는데 자본금이 7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치를 계속할 생각인가.
▲기회를 준다면 국회에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창의적인 정치를 하고 싶다.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여야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던데.
▲나는 그 일에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묘비명을 미리 써 놓았다는데.
▲ 그렇다. 묘비명은 ‘나의 작은 날갯짓이 언젠가 태풍이 될 거라는 사실을 늘 기대하며 사는 사람’으로 정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을 가슴에 안고 산다.
-취미는.
▲음악이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대학(인하대)에 들어가서 인드키 2기 리더로 활동했다. 대학 때 활동했던 동료들과 5년 전 인드키를 결성해 지난해 첫 앨범을 냈다. 2014년 12월 22일 성남시 분당 휴맥스 아트홀에서 세대 공감 행복 콘서트를 열었다. 지금 인드키가 39기인데 학생들이 처음에 아버지뻘로 생각해 어려워 하더니 친해지니까 아주 좋아했다.
전 의원은 인하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마케팅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100만원으로 픽셀시스템을 설립, 대표로 일하다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매각위기에 있던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맡아 회사를 살렸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거쳐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 교수로 일했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로 일했고 현재 새누리당 디지털정당위원장과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 여당 간사, 개인정보대책특별위원, K밸리 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선 빌리지와 관련해 쓴 글을 모은 ‘즐기다 보니 내 세상’이란 제목의 단행본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그가 추진하는 선 빌리지 조성은 아직은 실체가 없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인간 상상력이 미래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름 없는 촛불이 세상을 밝히듯 그의 선 빌리지가 미래 삶의 한 유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국회를 나섰다. 벚꽃 축제가 끝난 탓에 상춘객으로 북적이던 여의도 윤중로는 한산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