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00㎒ 주파수 대역 용도 결정을 앞두고 고심하고 있다. 700㎒ 주파수 대역을 이동통신용과 방송용으로 동시에 분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최적 방법론 도출이 쉽지 않다. 동시 분배 실효성 논란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전문가는 주요 국가가 700㎒ 주파수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글로벌 트렌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가 간 같은 주파수, 이른바 글로벌 표준을 사용하면 국가가 달라도 로밍에 유리하고 장비와 단말 수급, 네트워크 구축도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다. 자칫 글로벌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전파 간섭뿐만 아니라 장비·단말 수급 차질로 정상적 서비스 제공도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한다.
이들은 “오는 30일 열리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주파수정책소위가 700㎒ 주파수 대역을 이통용 혹은 방송용으로 분배해야 한다는 종전 논리를 배제하고 700㎒ 주파수 대역 글로벌 트렌드를 점검하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동통신 용도 주파수 확보 ‘큰 걸음’
주요 국가는 이동통신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건다.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 종료에 따른 여유 대역은 물론이고 디지털 TV 방송 주파수도 이통용으로 전환 중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 종료에 따른 여유 대역 이용 계획을 수립한 국가는 총 71개국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아날로그 TV 주파수를 이통용으로 결정했다.
이들 중 33개 국가는 아날로TV 주파수(북미·중남미·아시아·태평양 698~806㎒, 유럽·아프리카 790~862㎒)를 이통용으로 할당했다. 7개 국가는 경매 계획을 발표했고 나머지 31개 국가도 이통용 활용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과 프랑스, 유럽연합(EU)은 각각 시행한 아날로그 TV 주파수 용도 평가에서 이통용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높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에 바탕을 두고 유럽 전기통신주관청회의체(CEPT)는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아날로그 TV 여유 대역을 이통용으로 활용하도록 회원국에 의무화했다. 아시아태평양 전기통신협의체(APT)도 공동 밴드플랜(698~806㎒)을 이통용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요 국가는 현재 사용 중인 디지털TV 방송 대역을 이통용으로 추가·분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독일이 이르면 5월, 늦으면 6월 디지털TV 방송 대역 경매를 실시한다. 상향과 하향 각각 30㎒ 폭으로 총 60㎒ 폭을 할당한다. 프랑스도 디지털TV 방송 대역을 이통용으로 경매에 부칠 계획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12월 디지털TV 방송 대역을 이통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은 지난해 11월 디지털TV 방송 대역을 이통용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방송사에 경매대가 일부를 제공하는 ‘보상경매제도(Incentive Auction)’를 이용해 기존 디지털TV방송 대역을 이통용 주파수로 추가·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데이터 트래픽 폭증으로 이동통신 주파수가 부족해지자 방송용 주파수를 회수, 이통용으로 전환하려는 조치다.
◇지상파 UHD 상용화 ‘게걸음’
이통 주파수 확보를 위한 발 빠른 행보와 달리 주요 국가 지상파 UHD 상용화 행보는 더딘 실정이다. 현재 지상파 UHD 방송을 도입한 국가는 없다. 지상파 UHD 신규 주파수 분배방안 논의도 전무하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중심으로 UHD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주파수 부족으로 위성을 활용한 UHD 도입 정책을 마련하고 지난해 6월부터 위성으로 UHD 전용채널 한 개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과 스페인 지상파 UHD는 실험방송 수준이다. 미국과 스페인은 지상파 디지털 방송 규격(DVB-T2)에 바탕을 두고 고효율 동영상 압축 기술(HEVC, MPEG2 네 배 압축효율), MPEG4를 적용해 시연한 것이다.
이들은 지상파 플랫폼 진화를 위해 UHD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소비자 부담 등을 우려해 UHD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한다. 프랑스는 기존 디지털TV 방송 대역을 이동통신 용도로 경매하고 잔여 대역에서 지상파 UHD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국가는 지상파 UHD를 위한 새로운 주파수 공급 없이 기존 디지털TV 방송 대역 효율화 등을 이용한 단계적 지상파 UHD 도입 시나리오를 수립한 것으로 해석된다.
700㎒ 주파수 대역 이용 계획과 지상파 UHD 도입에는 글로벌 추세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이 같은 추세를 외면하는 건 갈라파고스 신세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일본이 내수 시장 보호를 위해 700㎒, 900㎒ 대역을 독자방식으로 이용했지만 시장 고립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사실을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모 대학 교수는 “주요 국가가 700㎒ 주파수 대역 이용과 지상파 UHD 도입에 공통된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700㎒를 지상파 UHD 용도로 할당하는 건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
-
김원배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