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산업기술 분쟁조정 활성화 방안은

기업의 생명과도 같은 산업기술 유출이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우리나라 기업은 기술유출 표적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은 기술유출에 대비해 보안의식 교육과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시스템 확보를 강화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자금과 여력이 부족해 기술유출 방지에 취약하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핵심기술 유출은 존폐와 직결될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보상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산업기술 유출이 늘고 피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소송을 아예 포기하거나 제기하더라도 소송에 따른 경제·시간 부담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가 가중되는 실정이다.

기업 기술유출로 인한 분쟁을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하고 적절한 피해보상과 구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산학연관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봤다.

◆참석자(가나다순)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

△김동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시장과장

△육현표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장(에스원 대표)

△임종효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국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기술유출 표적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최근 3년간 국내 중소기업 12.1%가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고 건당 피해규모는 연평균 15억원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현황과 피해 규모는 어떠한가.

◇육현표 산업기술보호협회장(에스원 대표)=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NISC) 발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적발된 산업스파이 건수가 406건에 이른다. 최근 3년간 적발건수는 2012년 30건에서 2013년 49건으로 늘었다가 지난해는 63건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술 유출로 인한 기업 피해액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3%인 연간 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 5년간 적발건수 중 64%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는데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산업보안 의식이 낮고 보안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산업기술 유출은 특성상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중소기업은 존폐와 직결될 정도로 큰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피해기업이 보상을 받는 방법이 소송인데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고 있나.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중소기업 경우 기술이 유출되더라도 피해보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소송으로 해결하면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다. 때문에 중소기업은 아예 시작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고 처벌기준이 엄격하고 까다롭다. 승소 확률도 높지 않아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0건 중 2건 정도만 처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구제율이 20% 수준인데 일반적인 사건이 절반 정도 보장되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낮은 수치다.

◇사회=그렇다면 소송을 통해 피해보상을 받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

◇한민구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장=분쟁 형태는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산업기술 유출 관련 분쟁은 기술이라는 특수한 성격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전문성이 강조된다. 정부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에 근거를 둔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기업 간 또는 기업과 개인 간 기술유출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산업기술분쟁조정위는 관련 분야 법적·기술적 전문가인 변호사, 변리사, 교수 등 15인으로 구성했으며 조정신청 수수료 1만원으로 신청일로부터 3개월 안에 사건 해결이 가능하다.

◇임종효 서울지방중앙법원 판사=분쟁이 발생한다고 반드시 소송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법원에서 소송외분쟁해결기구(ADR)라는 조정·중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 전체 민사소송 사건 중 90% 이상이 ADR를 포함한 협상절차로 해결되고 5% 정도만 판결절차로 처리된다. 미국은 평균적으로 소송을 신청해서 본소송에 들어가는 데 2년 정도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상당히 고액이다. 시간적·경제적 낭비가 심해 ADR가 활성화됐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여전히 소송비용은 비싸다. 이 때문에 2010년부터 ADR를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조정은 절차가 간편하고 비용이 저렴해 소송의 단점을 보완하는 보완재며 소송을 통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회=일반 국민에게 조정제도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조정제도 활용도는 어느 정도이고 어떤 장점이 있나.

◇한민구=조정은 소송과 다른 절차로 진행된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소송에 비해 신속하고 쉬운 절차로 진행되는 것이 조정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 법에 따라 엄격한 판단이 적용되는 재판보다 좀 더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 양 당사자 사정이 참작될 수 있다. 무엇보다 조정은 공개가 원칙인 소송과 달리 전 과정이 비밀로 진행된다. 소송 과정에서 또 다른 기술유출이 발생하거나 기업 대외 이미지 실추 등 2차 피해를 해소할 수 있는 것도 조정의 장점이다.

다만 강제성이 없는 것은 한계다. 일방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김경환=조정은 소송으로 인한 사회적 리소스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분쟁에서 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성과 비용이다. 조정은 소송에 비해 이 부분이 탁월하다.

당사자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소송으로 가면 이기거나 지거나인데, 분쟁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이 가능하다. 조정 의뢰한 신청인도 피신청인도 만족한다. 실제로 타 분야 사례지만 조정이 성립한 다음에 이의신청해서 소송으로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조정 후 소송을 가는 때는 왜 소송으로 가게 됐는지를 분석해서 조정을 보완할 수 있다.

◇사회=산업기술분쟁조정에 대한 중소기업 인식이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 정부 대응책과 산업기술보호협회 추가 업무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김동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시장과장=지난해 조정신청을 했던 모 중소기업은 거래관계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침해를 당해 어려워했다. 포기하기 직전에 산업기술분쟁조정 도움을 받았는데 조정이 성립되진 않았지만 부담을 느낀 대기업이 피해 중소기업과 합의를 봤다.

정부는 소송에 비해 조정이 가진 이점을 알리기 위해 홍보를 확대할 계획이다. 산업부 R&D 교육 기술보호 과정에 제도 소개 내용을 반영하고 올해 시범 실시하는 연구책임자 교육과정에도 제도를 소개할 예정이다. 또 중소기업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 최고경영자(CEO)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올해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기술평가원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중소기업 CEO 대상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민구=산업기술분쟁조정위는 지난해 출범 이후 100여건 상담을 수행했고 5건 조정신청을 진행했다. 조정 업무 외에도 기술유출 방지와 보호를 위한 상담과 법률자문 등을 기업에 무상으로 지원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조정제도 유용성을 소개하고 제도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사회=산업기술분쟁조정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돼야 하는데 특단의 대책이 있나.

◇육현표=분쟁조정뿐만 아니라 전후 단계인 사전예방과 사후제재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사전 예방을 통해 기술분쟁 자체를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술유출이나 침해를 대비한 증빙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사후제재를 통해서는 기술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고소·고발, 소송에 부담을 갖게 함으로써 조정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기술분쟁 재발도 방지할 수 있다.

◇임종효=조정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분쟁이 발생하면 끝까지 시비를 가려 자신의 정당함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절차만 지연됐다고 하는 인식 등 부정적 태도도 만연하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은 또 다른 특성도 있다. 피신청인이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 일부 피신청인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그동안 기술을 이용하기를 원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 유용성이 떨어진다. 이런 때 조정은 강제성이 강하지 않아 응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이익까지 다 내놓게 하는 등 특별한 입법이 필요하다. 소송 이전에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유인을 줘야 한다.

◇사회=무엇보다 기술유출로 피해를 보는 기업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한 정부 대책이나 전문가로서 피해기업에 조언할 것이 있다면.

◇김동주=2007년에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제정하면서 기술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처음 마련했다. 이를 총괄하는 산업기술 보호위원회와 지원하는 협회, 조정하는 분쟁조정위 등을 구성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강화 노력 및 핵심기술 유출이 국가안보와 경제를 해치는 중대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제도도 추진한다. 산업기술 분쟁지원제도 확산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육현표=산업기술보호협회에서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을 맡고 있다. 기술유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 협회로 연락하면 산업보안 전문인력이 조정신청서 작성부터 전체 조정절차 진행을 무료로 지원한다. 아울러 협회에서는 기술보호와 기술유출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부 지원사업을 수행하는데 앞으로 기업과 정부 지원사업을 연계해 우리 산업계 전반의 보안역량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사회=정부는 그동안 기술개발 위주로 정책을 펼쳤다. 기술보호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부족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제도적 보완과 관련 예산 확보에 관심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동주=안타깝게도 산업부 한 해 기술보호 예산이 수년째 10억원 내외에 머물러 있다. 전담부서도 없이 전담 인력 한 명이 담당한다. 기술유출 피해 심각성과 기술보호 중요성을 감안할 때 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실효성 있는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사회=마지막으로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분쟁 또는 조정제도에 대한 조언이나 오늘 논의에 대해 추가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김경환=세계적으로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처벌 수위를 상향하는 추세다. 기술유출을 단순히 한 기업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사회적·국가적 문제로 접근한다. 분쟁조정 제도에 대해서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기술유출 당한 피해자가 법적·제도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소송보다 조정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김동주=정부 역할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잘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R&D를 하고 이를 통해 개발된 기술들이 잘 보호될 수 있도록 관심을 많이 가지겠다. 아무리 기술을 보호해도 유출될 수 있으니 유출 이후 대응책도 마련하고 있다. 필요성 있는 부분에 대해 제도를 정착하고 예산 지원하겠다.

◇임종효=분쟁이 발생한 이후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사건이 법원까지 오기 전에 분쟁조정위에서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법원도 살고 당사자나 분쟁조정위도 사는 길이다. 올해 중에 꼭 분쟁 조정 성립사례가 나와서 조정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바란다.

◇육현표=분쟁이 발생했을 때 재판으로 가면 사회적 경제적 부담이 크다. 심하게 말하면 낭비다. 기술유출이 없도록 사전에 방지를 잘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협회 일이 중요하다.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는 물론이고 기술 유출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 할지 교육이나 홍보 등도 필요하다. 협회뿐 아니라 관련 각계가 다 나서서 힘을 모아야 한다.

정리=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