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공무원의 외출을 허하라

[데스크라인]공무원의 외출을 허하라

넥타이 없는 셔츠에 가벼운 재킷 그리고 등 뒤엔 배낭.

요즘 중앙 정부 국장들의 대체적인 표준 복장이다. 잘 다려진 흰색 셔츠에 넥타이, 넥타이핀까지 꽂은 정장 차림은 이제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자유롭고 활동적인 모습이라 보기에도 편하다.

이런 복장 변화와 함께 생각과 활동까지 자유로워졌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철통같은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자기 시간마저 활용 못하는 처지가 됐다.

이른바 ‘모(某) 과장 업무이탈 사건’으로 촉발된 ‘암행 감시 정국’은 공무원의 당연한 일상업무 수행까지 주저하게 만들었다. 확인이 안 되는 민원인과의 만남은 언감생심이 됐다. 굳이 말썽거리를 만들기보다 자리에 앉아 한량처럼 ‘시간 찍는 일’을 더 중히 여긴다. 이런 촌극이 벌어진단다.

중앙부처 김 모 과장은 세종시에서 오전 업무를 끝내고 부리나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서울 출장길에 나선다. 협회로부터 기업체 대표 몇 명이 함께 모인 자리에 정부 당국자가 꼭 나와 의견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한 달 전 받아서다. 서울에 도착한 김 과장은 서울청사 스마트워크센터부터 들른다. 왜냐하면 서울에 와서 일한다는 증거를 남겨야 했다.

스마트워크센터 입출기에 자기 동선을 찍은 뒤 협회 간담회에 참석한 김 과장은 다음 미팅 일정이 있지만 그곳으로 바로 가지 못한다. 잠실 인근 정부 스마트워크센터에 또 들른다. 이번에도 여기서 퇴근한다는 족적을 남겨야 했다. 이날 오후 두 개의 약속을 지키는데 동선은 네 개나 됐다.

세금을 쏟아부어 스마트워크센터까지 만들어 놓고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해놓고선 일하는 방식은 전혀 스마트하지 못하다.

다시 복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왜 배낭을 메는지 궁금해졌다. 이 질문에 그 국장 왈 “길을 가다가도, 스마트기기에 메모하거나 전화를 받으려면 언제든 양손을 다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들 열심히 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 다른 공직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산업계나 시장에서 가장 안 좋은 시그널(신호)은 공무원이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할 때가 아니라 공무원이 아무것도 안 할 때다.”

공무원이 안 움직이면 산업도, 시장도 잘 안 돈다. 그들이 자리에 앉아 달콤함에 빠지면 빠질수록 정책 활력은 식는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게 하고, 이번 사건과 비슷한 근무지 이탈·자택 근무 같은 편법이 발각되면 ‘원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처리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면 된다. 그렇게 방침을 정했는데도 요령을 피운다면 그는 더 이상 세금으로 월급을 줄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스마트한 정책 아이디어는 현장의 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온다. 책상 보고서에 든 정책은 말 그대로 ‘글자 정책’에 불과하다.

하다못해 서울로 오는 출장길에 KTX 창밖 푸른 녹색의 향연을 보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는 불현듯 떠오를 수 있다. ‘어디 가서 출입기록을 남길까’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면 이런 창의적 발상은 깨진다.

이진호 그린데일리 부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