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브랙퍼스트’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베이컨이다. 우리나라 김치만큼 대표적인 메뉴다. 삼겹살을 바싹 구운 베이컨 몇 조각이 있어야 제대로 된 미국식 조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착각이다. 정통 미국 조식엔 베이컨이 없었다.
모든 게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 작품이다. 그는 1930년대 양돈업자 요청으로 돼지고기 소비를 늘리기 위해 ‘베이컨’을 개발했다. 그리고 베이컨이 포함된 식단을 ‘정성 어린 아침 식사’라고 포장했다. 기존 미국 조식엔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의사 소견도 곁들였다. 베이컨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정성 어린 아침 식사’라는 프로파간다(선전)에 온 국민이 식습관까지 바꿔버렸다.
버네이스가 여성 흡연율을 높인 일화도 유명하다. ‘러키 스트라이크’라는 담배회사에서 홍보 의뢰를 받은 그는 근사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뉴욕 5번가를 활보하도록 했다. 그러자 담배가 ‘멋쟁이 여성’ 아이콘처럼 돼버렸다. 여성 흡연이 유행처럼 번졌다. 세월이 흘러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버네이스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말년에 금연 전도사로 변신했지만 중독자의 습관을 되돌리지 못했다. 프로파간다 위력이 빚어낸 아이러니였다.
방송통신시장에 프로파간다 전쟁이 한창이다. 700㎒ 주파수 할당, 결합상품 규제, 통신요금 인가제, 지상파 재전송료 등을 놓고 극과극 여론전이 뜨겁다. 정치 싸움판 같다.
700㎒ 주파수 전쟁이 단연 압권이다. 지상파 3사는 지난해 10월 한 달간 저녁 메인뉴스에 관련 보도를 무려 30차례나 쏟아냈다. 700㎒를 방송용으로 써야 한다거나 소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최근엔 정부가 방송과 통신이 함께 쓰는 절충안을 내놓자 이마저도 졸속이라고 몰아세웠다. 마치 700㎒를 방송용으로 쓰지 못하면 국민이 초고화질(UHD) 방송을 볼 수 없을 것처럼 선전한다. 주요 선진국이 줄줄이 황금 주파수인 700㎒를 통신용으로 할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합상품 규제 논쟁도 버금간다. 대학 교수를 앞세운 신문 기고전이 암암리에 펼쳐진다. 통신사업자가 배후다. ‘공정 경쟁’이나 ‘이용자 편익’과 같은 달콤한 문구가 담겼다. 지난주 지상파가 케이블업체를 상대로 방송 재전송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지상파 재전송료 논쟁’도 새로운 테마로 떠올랐다. ‘콘텐츠 제값 받기’와 ‘지상파 횡포’라는 양극단의 선전전이 마주보고 달릴 것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왜곡된 프로파간다가 승리하는 일이다. 여성 흡연 캠페인과 비슷한 재앙이 빚어질 수 있다. 황금 주파수를 방송용으로만 할당한 뒤 폭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통신 블랙아웃은 대한민국을 암흑으로 몰고 갈 것이다. 결합규제나 지상파 재전송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담배가 몸에 해롭듯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엊그제 한국통신학회, 한국전자파학회, 대한전자공학회, 한국정보과학회 네 학회가 이런 우려를 담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700㎒ 주파수를 방송사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마지막 보루는 정책 입안자다. 오로지 대한민국 미래만 보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프로파간다 홍수 속에 숨은 진실을 직시하자.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