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파격 대신 실리 노선 걷는 미래부

[데스크라인]파격 대신 실리 노선 걷는 미래부

정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개발(R&D) 혁신안이 현안으로 부상했다.

혁신안 골자는 5개다. 한국형 프라운호퍼 시스템 도입, 기관장 임기 2년 연장, 일몰형 융합연구단 확대, 과학기술전략본부 설치, 과학기술정책원 설립이다.

일부 반발도 나왔다. 수위는 낮지만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와 과학기술계 노동조합 등이 장기비전 제시와 사전협의를 요구했다.

정부가 내놓은 혁신안은 대부분 출연연이 요구했던 내용이다. 정부의 일방통행보다는 출연연과 소통했다. 이번 혁신안을 두고 ‘영리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부는 과거처럼 ‘뭔가 확 바꿀’ 틀을 손대는 거버넌스(지배구조)에 집착하지 않았다. 조직은 최소한으로 건드리면서 연구생산성을 배가할 방법을 궁리했다. 파격 대신 실리를 챙기는 전략을 쓴 셈이다.

출연연 개편은 정권마다 나온 메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모두 개편안을 내놨다. PBS제도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현재 출연연 기본 골격은 노무현정부 시절 나왔다. 출연연 혁신을 요구하던 정부는 ‘전문연구단위조직’ 개편을 들고 나왔다. 출연연 기본 틀은 그대로 두되, 만들고 없애기 쉬운 일몰형 연구조직을 짜자는 것이었다. 메르스가 유행하면, 이에 대응할 ‘바이러스 연구단’ 같은 연구조직을 만드는 식이다. ‘노마드(유목민)식 연구소’ 형태다. 규모는 10명에서 최다 150명 정도로 구성하면 됐다. 성과가 좋으면 바로 창업할 수도 있다.

새 조직을 꾸린다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연구계 반대로 불발됐다.

이명박정부로 넘어와선 거버넌스 개편논의가 나왔다. 광우병 파동 등 정치현안에 밀리다 집권 3년차가 돼서야 외국계 컨설팅업체 아서앤드리틀(ADL)이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 이마저도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2013년엔 출연연 발전 전략을 만들기 위한 가동됐다. 출연연 미션 짜는 일은 ETRI, 조직개편은 KIST, 성과확산 방안은 생산기술TF가 연구원이 맡았다. 200여 연구원이 참여했다. 출연연 역할에 따라 임무연계형 비중 폭을 조정하는 ‘임시’ 개선안이 만들어졌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출연연 R&D 혁신안도 ‘최선안’은 아니다. 미래부는 ‘영리한’ 차선을 선책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출연연 거버넌스나 조직개편이라는 큰 논의보다는 출연연과 연구계에서 그동안 논의되고 요구했던 내용을 수용하면서 점진적 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연구비를 따기 위해 책임연구원들이 줄줄이 예산부서로 출장 다니는 일, 출연연 기관장이 임기 보장받기 위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일을 막겠다고 한 것은 인정할 만하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될 과기전략본부 설치는 더욱 그렇다.

출연연 개편은 한두 건 고쳐서 될 일이 아니다. 조직-예산-임금-정년-R&D 체계 등이 모두 얽혀 있다. 지금처럼 침체기에는 한꺼번에 무엇을 얻기보다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않은가.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