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과학기자대회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로 가는 길. 지하철과 도로 곳곳에서 마스크 쓴 사람을 만난다. 얼핏 봐도 시민 열 명 중 네 명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반 마스크부터 의료용 마스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확산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벌어진 풍경이다.
코엑스에 도착해 수백명의 국내외 기자가 모인 행사장에 들어섰다. 이번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간혹 눈에 띄는 마스크 착용자는 일본 등 아시아권 기자들이다.
외국 기자들은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한 기자는 “병원 내 감염이 97%라는데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있나”고 반문했다.
전날 열린 메르스 특별세션에선 사이언스지 기자가 “거의 모든 사례가 병원 내 감염이고 지역 사회나 가정에서 감염은 없는데 괜히 휴교해 지역사회 걱정만 키우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들 의견이 맞다. 현재 국내 메르스 감염자 대부분은 병원에서 감염됐다. 외국 발병 사례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는 증상이 심해진 다음에 전파력이 강해지고 이때는 대부분 환자가 입원해 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이런 논리라면 일반인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닐 이유도 없다. 마스크는 기침 등 증상이 있는 사람만 쓰면 된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이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처음부터 안이한 상황판단과 대처, 낙관적 발표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추가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면서, 정작 본인은 마스크를 쓰고 현장을 방문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중적 행동도 국민 질타를 받았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니 정부 발표 역시 믿지 않는다.
냉정해야 한다. 우리가 메르스에 과도한 불안과 우려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도 미온적 대처에서 벗어나 폐렴 환자 전수 조사와 환자 방문 병원 공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메르스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그것이 메르스를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