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갤럭시 일루미네이션

서형석 전자자동차산업부 기자
서형석 전자자동차산업부 기자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는 일본 유행 1번지다. 전후 미군이 터를 잡았고 대사관과 국제기구가 모여 있다. 분위기는 서울 이태원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롯폰기힐스 등 도시재생 성공사례로도 주목 받는다.

삼성전자가 2011년부터 매년 겨울마다 여는 ‘갤럭시 일루미네이션’은 롯폰기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도쿄타워가 내려다보이는 명당 게야키자카 거리의 밤을 아름다운 빛으로 수놓는다. 겨울 조명축제를 좋아하는 일본 고객에 선사하는 삼성전자의 선물이다.

삼성은 일본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스마트폰 점유율 4.7%로 소니, 샤프 등 후발주자에 밀렸다. 아이폰과 유일하게 대적했던 시절이 무색하다. 소비자가전(CE)부문 제품은 철수한 지 오래다.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기업 간 거래(B2B)에서만 조금씩 성과를 내는 정도다.

그럼에도 갤럭시 일루미네이션은 계속돼야 한다. 선대와 삼성 자신에 대한 예의기 때문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밤을 지새우며 훗날 메모리 1등 신화 시발점인 ‘도쿄선언’을 롯폰기 인근 오구라호텔에서 완성했다. 이건희 회장은 그로부터 20년 뒤 호텔이 내려다보이는 롯폰기에 삼성의 일본 본거지를 마련했다. 일루미네이션 빛에는 일본에서 터를 잡기 위해 노력한 선대의 노력이 담겼다.

삼성전자재팬(SEJ)은 연초 사옥 이전을 두고 스마트폰 철수설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난 4월 갤럭시S6와 S6엣지를 선보였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 속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집행하고 있다. 일본 판매 스마트폰 중 유일한 곡면 패널을 내세워 유행에 민감한 일본 소비자를 공략했다.

지난해 겨울 바라본 갤럭시 일루미네이션은 아름다웠다. 번갈아 빛나는 푸른색, 붉은색 조명 아래 현지인들은 저마다 삼성과의 추억을 남겼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에 얽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도 한국 대표 상품 ‘갤럭시’는 민간 외교사절로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삼성에는 4년 전 모두가 불모지라 여겼던 열도에 ‘갤럭시’를 안착시킨 경험이 있다. 올겨울에는 갤럭시S6 다섯 가지 색으로 꾸며진 ‘갤럭시 일루미네이션’을 만나고 싶다. 이다바시의 넓은 새 집으로도 옮겼으니 심기일전할 때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서형석 전자자동차산업부 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