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통신 사업자는 모바일 결합상품을 두고 끊임없는 분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요금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에 속한다. 반면에 유료방송 요금은 최저 수준이다. 고가 이동통신이 유선상품과 결합돼 초고속 인터넷과 IPTV가 거의 공짜로 취급되고 있다.
한 통신사는 모바일 2~3회선에 가입하면 인터넷이 무료라고 광고한다. 또 다른 통신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업한다. 모바일 시장 지배력으로 방송·인터넷 요금을 저가화하고 있다. 이는 결국 유선시장 생태계 파괴로 이어져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자 방통위는 최근 대대적으로 허위·과장광고 조사를 실시, 과징금 총 11억8500만원을 부과했다. 시장 왜곡을 방지하고 이용자 이익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결합상품에 따른 유선시장 생태계 파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합상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아직까지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모바일 결합상품 이용약관은 유선시장을 왜곡시키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다. ‘온가족 무료’ ‘뭉치면 올레’ 등 이용약관은 모바일에 적용해야 하는 할인금액을 인터넷에 일괄 할인하도록 명시했다.
이는 모바일을 이용해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면 기본적으로 인터넷과 결합해서 판매하는 IPTV도 영향을 받는다. 모바일 시장 지배력을 유선시장전이를 허용한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모바일 결합상품으로 인해 시장지배력이 전이되고 있는 것은 데이터로 명백히 증명됐다. 모바일 결합상품 판매가 집중된 지난 2011~2014년 SK텔레콤이 재판매한 초고속 인터넷 연평균 성장률은 약 32%다. 전체 평균 2.4%를 크게 웃돈다. 재판매는 모바일 사업자 SK텔레콤이 자회사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상품을 구매해 모바일 상품과 묶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오롯이 모바일로 판매 효과를 끌어올렸다.
IPTV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전체 유료방송 연평균 성장률은 7%다. 하지만 SK계열 IPTV는 연평균 성장률 38.5%를 기록했다. 과연 지난 4년간 SK계열 방송·인터넷 품질이 경쟁사보다 독보적으로 개선돼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이는 명백한 시장지배력 전이의 증거다.
전기통신사업법과 시행령은 시장지배력 전이 행위를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로 규정해 금지행위로 분류했다. 시장지배력 전이가 장기적으로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 구조를 해쳐 이용자 이익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동등할인 제도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할인 금액을 상품 하나에 몰아주는 것을 금지, 각 상품을 동일하게 할인하는 방식이다. 나도 이에 크게 공감한다.
동등할인 제도는 특정 할인율을 정한 후 각 단품을 해당 비율대로 할인한다. 모바일 할인액을 인터넷이나 방송에 일괄 적용할 수가 없다. 이용자는 결합상품으로 모바일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인터넷·방송을 무료로 제공하는 비정상적 행위가 금지되기 때문에 유통 생태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 총할인액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지배력 전이 현상도 방지하는 셈이다.
시장지배력 전이를 촉발하는 현행 일괄할인 제도를 조속히 중단하고 동등할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고, 방송·통신 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유정석 현대HCN 대표 jsyoo@hc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