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을 다룬 영화 중 히트한 작품으로 ‘백 투 더 퓨처2’가 첫손에 꼽힐 듯하다. 주인공 마티는 미래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로 날아가는데, 그 미래가 바로 2015년이다. 당시 배경이 됐던 30년 후 과학기술은 실제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전문가 상대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 현실에서 이미 구현됐거나 실용화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 글라스를 연상시키는 헤드기어식 디지털기기에서부터 영상통화시스템, 자동 연료주입 로봇, 지문인식 결제시스템 등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신기만 하면 저절로 끈이 묶이는 자동매듭 운동화는 나이키가 올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공중부양 스케이트 보드도 지난해 타임지가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하며 실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아직은 지상으로부터 3㎝ 높이에서 15분 남짓 떠 있는 수준이지만, 도로저항을 줄이기 위한 자동차 업체 관심이 높아 생각보다 일찍 빛을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30년이란 시간은 이제 상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신석기 시대를 열기까지 200만년 넘게 소요되고, 다시 청동기를 맞기까지 5000년 이상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찰나라 해도 좋을 시간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 인간은 사는 동안 적어도 세 번의 과학기술 혁명을 겪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과학기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광복 70주년을 맞아 과학기술 70선이 선정됐다. 그 목록에는 포니, D램 메모리 반도체, 우리별 인공위성, 한국형 표준원전(KSNP) 등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글로벌 무역강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거름이 됐던 성과로 빼곡했다. 이들 중에는 CDMA기술 상용화나 나로호 발사, 대한민국표준시(KRISS-1) 제정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일군 성과도 적지 않다.
1960년대 중반, KIST를 필두로 설립되기 시작한 출연(연)은 선진기술 국산화를 통해 세계 유례없는 산업화 달성 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기업과 대학의 역량이 커지고, 추격형 R&D로는 세계시장 공략이 불가능해진 만큼 출연(연)이 체질개선을 이뤄 창조형 R&D 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야 할 때다.
창조한다는 것은 개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복잡하고 다양화된 사회에서 혼자 힘으로 길을 내기 어렵다. 지난해 6월 30일,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로 갈라져 있던 25개 출연(연)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통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 연구 개발 체제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출연(연) 간 칸막이를 없애고, 융합과 협력의 R&D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통합 1주년을 맞은 연구회가 지난 1년간 가장 공들였던 것도 융합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2개의 일몰형 융합연구단과 10개의 융합클러스터를 선정해 국가·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고 창의적 융합연구가 일상화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출연(연)이 기술융합시대 주역으로 미래 30년, 기술독립 100년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퍼스트 무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백 투 더 퓨처2’가 상상했던 30년 후의 미래에서, 아직까지도 도무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타임머신뿐인 것 같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웜홀(Wormhole)을 통해 수식으로만 가능했던 시간여행을 이미지로 보여줬다. 이 이론을 처음 제기한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킵 손(Kip Steven Thorne)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웜홀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2015년은 일반상대성 이론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기도 하다. 시간여행하는 타임머신을 개발하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꿈을 꿀 수는 있다. 꿈이 있는 한 도전은 계속된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sdc6506@n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