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처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에 쓰일 단말기(무전기)를 각 기관이 예산을 확보, 별도 구매하라고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관별 특성이나 사용 목적, 재난망 구축 일정 등을 감안한 포석으로 해석 가능하지만, 각 기관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재난망이 가동되더라도 사용할 단말기가 없는 비상식적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전처는 이달 초 재난 관련 주요기관에 ‘2016년도 재난망 확산사업 단말기 구매 예산 확보 요청’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처는 기획재정부 예산안 세부 지침에 의거, 단말기를 각 부처 소관 예산으로 충당하되 ‘정보화 사업’이 아닌 ‘일반 사업’으로 요구할 것을 요청했다.
대상에는 재난 관련 8대 분야 333개 기관이 모두 포함된다. 경찰, 소방, 지자체, 군, 한국전력, 전기안전공사, 가스안전공사뿐만 아니라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충북대병원 등 주요 지방 병원이 망라됐다. 단, 지자체는 국비와 지방비 50 대 50의 매칭펀드 형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단말 규모는 21만대, 금액은 4300억원이다.
심진홍 안전처 과장은 “단말기는 내구연한이 짧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구매하는 것이라 총사업비 개념에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게 기재부 판단”이라며 “각 기관의 과도한 물량 요청에 따른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정보화 사업이 아닌 일반 사업에 포함시켜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일 수 있는 효과도 기대했다.
기대와는 달리 각 기관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재난망만 구축하고 활용은 못하는 반쪽짜리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후 장비로 인한 위험은 계속 방치한 채 필요 수량을 모두 구매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일부 기관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관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자명하다는 게 각 기관 주장이다.
한 재난기관 관계자는 “우리 기관은 한 해 통신 관련 예산이 100억원 수준인데 이 예산 전부를 단말기 구매에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단말기만 사고 다른 통신 인프라 교체는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관계기관은 기재부가 재난망 사업 예산 축소를 위해 중앙부처가 해야 할 예산 확보를 각 기관으로 전가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탓에 단말 제조사와 통신사는 투자 시점을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상황을 보면서 예산을 나눠주자는 포석이겠지만 결국은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는 게 목적”이라며 “기관별 예산 할당 시기를 조정함으로써 2017년 사업 완료에 자신감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과장은 “기관별 예산 확보에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각 기관과 협력해 적정한 예산과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망 단말기 이슈는 주관부처인 안전처가 일괄 구매할지, 각 기관이 별도로 구매할지는 지난 3월 정보전략계획(ISP) 완료 전후에 불거졌다. 2월과 3월에 열린 공청회에서는 중앙부처(안전처)가 단말기를 일괄 구매하는 방향성이 제시됐다.
이후 기재부가 예산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각 기관이 별도로 구매하는 방식이 거론됐다. 하지만 안전처 예산에서 빠진다고 전체 규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각 기관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다시 일괄 구매 방식이 거론되다가 결국 기재부 주장에 따라 별도 구매로 가닥이 잡혔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