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에서 이제 막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40년 만의 가뭄에 농민은 올해 수확을, 기업은 산업용수, 국민은 식수를 걱정하고 있다. 여름 불청객 녹조는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했다. 15년 만에 한강에 조류경보가 발령되는 등 녹조 피해가 우려된다. 이쯤 되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재난재해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재난 발생은 불가항력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범위를 전염병에만 한정시켜도 20세기 초 5000만명의 인명 피해를 낸 스페인 독감, 2003년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그리고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전염병 발생 그 자체는 손쓸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 전염병 국내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료시스템과 관련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에볼라 등 전염병 창궐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전염병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역량을 우선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최근 변종 독감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홍콩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 전염병들은 끊임없는 변이를 일으키며 기존 백신을 무력화한다. 교통시스템 발달 등으로 감염질환 확산에 걸리는 시간이 급격히 짧아져 전염병 발생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해 나가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방제, 소독, 예방, 감염 경로 파악 중요성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다. 메르스로 인한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바이러스성 전염병 환자 이송 과정에서 노출된 차량과 병실, 의료진을 위한 소독작업은 수작업으로 이뤄져왔다. 만약 로봇기술 등을 활용한 무인 공간 방역시스템이 존재했다면 초기 감염원에 의한 메르스 확산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의료진의 용기와 희생에 기댄 방역시스템만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녹조 역시 스마트한 관리가 중요한 재난이다. 녹조의 근원적 봉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생태계에 미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은 녹조를 멸(滅)하는 것이 아닌 다스릴(治)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녹조가 발생하는 하천 유속 관리나 조류 독성 완화를 위한 기술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한 방안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KIST의 녹조연구팀도 이 같은 관점에서 산학연 개방형 연구사업으로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기술 역량과 재난재해의 불가항력적 특성 및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재난 대응 R&D의 초점을 원천적 차단이 아닌 피해 최소화에 맞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삼국지의 유명한 일화에서 유래된 금낭묘계(錦囊妙計)라는 말이 있다. 유비가 오나라 주유의 계략에 빠져 위기에 처했을 때 제갈량이 건네준 세 개의 비단 주머니에 든 묘책으로 목숨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재난이라는 불가항력적 위험을 원천 봉쇄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지혜다. 다시금 재난재해가 닥쳤을 때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을 구한 비단주머니가 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bglee@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