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을 향해 글로벌 SW기업이 무차별적인 라이선스 공세를 펼치지만 국내에서 조정 역할을 맡은 정책 기능은 되레 약화돼 우려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 건축설계사무소는 국산 가상화 술루션을 사용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명의로 ‘MS 오피스’ 프로그램 라이선스 위반‘을 했다는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이 사무소는 위반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추가 계약을 하지 않으면 법적 소송을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사무소가 변호인으로 대응하자 MS 측 법무법인은 소송 절차를 중단했다.
합의금 장사를 노린 법무법인 사례도 있다. 한 중소개발사는 직원 한명이 ‘메스웍스’란 고가 수학 통계프로그램을 이용하다 법무법인 고소를 받았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사원 하나가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깔아 놨다 표적이 됐다. 매스웍스 법무법인은 프로그램 하나가 1억50000만원에 해당한다며 합의금으로 8억원가량을 요구했다. 사건을 변호한 법무법인이 수사절차와 가격에 문제를 제기하자 수백만원 합의로 마무리됐다.
라이선스 합의금 장사는 중소기업만 노리지 않는다. 최근 MS가 한국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라이선스 위반 계약 역시 같은 사안이란 지적이다. 한국MS는 올 초 한전에도 저작권 사용현황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법적 지식이 부족해 합의금에 응하는 사례가 많다. 통계로 잡히지 않지만 피해가 심각하다는 업계 시각이다. 남희섭 법무법인 지향 변리사는 “법무법인과 글로벌 SW기업이 연계한 ‘라이선스 합의금’ 장사는 대부분 기업이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합의로 끝나 통계가 잘 잡히지 않지만 중소 개발사나 콘텐츠업체가 대부분 겪는다”고 지적했다.
SW 공정이용에 관한 권리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국가적 노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세준 변호사는 “SW는 되팔 수 없고 공동 이용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다른 상품에 비해 불공정한 계약 조항이 많다”며 “공정 이용 조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SW 공정이용에 대한 권리를 알려주고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정책 기관 한국저작권위원회에도 화살을 돌렸다. 위원회가 지난 6월 진주로 본원을 이전하면서 SW 업무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관련 업무는 일부 SW임치와 저작권 보호 업무만 남았다.
위원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W 전문인력 상당수가 진주이전 등으로 위원회에서 빠져나가 단속 외에 소비자 분쟁 조정 기능은 상실했다”며 “진주 이전은 SW 전문인력 부재와 팀 해체를 가속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SW라이선스 위협으로 보호받는 SW프로그램 분쟁 조정 기능은 엄두를 못 낸다”고 덧붙였다.
SW 저작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이용자 권한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국내 SW저작권 보호 정책은 지나치게 글로벌 SW기업에 편향된 보호정책에만 쏠려 있다”며 “‘합의금 장사’에 중소기업이 희생되지 않도록 공정 이용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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