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은 25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설 전망이다. 국민안전처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예산에는 단말기 구매 비용이 빠졌다. 각 기관에 단말기 구매를 전가했다.
세출은 늘어나는데 세수 증가가 여의치 않으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줄일 수 있다면 마른 수건이라도 짜겠다는 예산당국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가뜩이나 메르스 사태 등으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려면 올해 대규모 추가 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내년 세수에서 앞당겨 쓰는 식으로 추경을 편성하다보니 내년 예산안은 더욱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긴축 재정을 펼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차세대 먹거리를 대비하려면 R&D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려도 시원찮은 판국이다. 중국과 일본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려면 정부가 종잣돈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하면서 곧 불어 닥칠 태풍을 대비하지 못하는 꼴이다.
재난망도 마찬가지다. 단말기 구매를 각 기관에 전가하면 예산난에 허덕이는 기관이 단말기 구매를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다. 결국 재난망이 가동되더라도 단말기가 없는 웃지 못할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거금을 들이고도 재난망을 무용지물로 방치하면서 더 큰 예산낭비가 불가피하다.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큰 그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수 증대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 산업경기 활성화는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그동안 여론을 의식해 회피해온 증세 논의도 이젠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증세 없이 복지와 R&D를 모두 강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윗돌 빼어 아랫돌 막는 돌려막기식 예산 정책을 타개할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