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리콘밸리 다양성열풍, 우리는 언제쯤

[기자수첩]실리콘밸리 다양성열풍, 우리는 언제쯤

지난달 말 실리콘밸리를 들썩이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대법원이 미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우버 등 글로벌 IT기업은 너나할 것 없이 축배를 들고 나섰다. 최고경영자(CEO)들은 판결을 축하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기업 공식계정을 동성애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바꿨다.

최근 현지에선 이들 기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동성애 인권 운동을 단순 마케팅 차원에서만 활용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실리콘밸리 IT기업은 인종, 성별 차별을 없앤 다양성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구글이 지난해 업계 처음 기업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민낯이 드러났다. 남성·백인 일색이었다. 이후 각 기업은 부랴부랴 다양성과 관련된 사업에 투자하거나 지원 펀드를 조성했다.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지난 상반기 실리콘밸리 핫이슈 중 하나도 여성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엘렌 파오 소송 건이었다. 그녀는 실리콘밸리 투자사 클라이너퍼킨스앤바이어스(KPCB)에서 근무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회사를 고소했다. ‘자유와 진보’ 지역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소송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화두에 올랐다. 최근 레딧(Reddit)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 같은 논란은 더 거세졌다.

실리콘밸리에서 다양성이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이 부럽다. 한국은 아직 성 차별은 물론 지역 차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동성애는 더하다. 유교문화라는 정서상 기업이 이 같은 논의에 참여하는 게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다. 옆나라 중국 대형 IT기업 알리바바는 동성애 커플 단체결혼식까지 지원하는 중이다.

다양성은 글로벌 시대에 IT기업이 필수적으로 갖춰야하는 미덕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 낮다. 삼성, LG 등 국내 대형 IT기업이 구글처럼 다양성 문제에 먼저 손을 걷어붙인다면 한국 IT업계에도 다양성 바람이 불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