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정부의 이율배반

왜 ‘4대강 살리기’ 일까. MB정부 시절 내내 의아했던 궁금증이다.

강을 살린다면, 자연 생태계 복원 사업이 먼저 떠오른다. 문명이나 인공적 부산물을 최대한 멀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강을 살리자면서 콘크리트로 강둑을 쌓아올렸다. 그나마 있던 습지와 모래톱마저 사라졌다. 이것이 과연 4대강 살리기인가. 프로젝트명과 실제 사업 사이 간극이 컸다. 기존 관념과 이성의 해체. 정부 정책에도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데스크라인] 정부의 이율배반

박근혜 정부가 내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2.3% 줄이기로 했다. R&D 예산이 준 건 25년만이다. 국가 재정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25년을 이어온 증액 기조까지 포기했을까.

논리적으론 이해할 수 없다. 이 정부의 아이콘이 무엇인가. 미래다. 한국경제 미래를 예비하자며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었다. 창조경제라는 ‘근혜노믹스’도 제시했다. 미래를 그토록 강조해온 정부가 미래와 직결된 R&D 예산부터 깎고 나섰다. 4대강을 살리자며 강을 파헤친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미래를 살리자면서 미래를 죽였다. 이를 두고 “박근혜정부에 철학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 기존 관념과 질서를 뒤집는다. 반 이성주의나 이율배반주의에 가깝다.

이율배반적인 정책은 이미 만연하다. 공무원에게 ‘복지부동하지 말라’면서 업무감사는 역대 최강으로 강화했다. 감사원 파워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어느 정부보다 강하다. 공직 사회 먹이사슬을 타고 산하기관까지 바짝 엎드렸다. 장관마저 존재감이 없다. 소신있는 공무원을 요구하지만, 정작 튀면 죽는다.

논리적 엇박자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국가재난안전망을 구축하면서 단말기 예산을 잡지 않았다. 단말기는 필요한 기관이 스스로 확보하라고 떠넘겼다. 재난망은 있지만, 단말기가 없는 ‘어이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국가 정책이 이렇게 앞뒤가 안 맞아도 되는가.

게임업계에선 주무부처를 놓고 헷갈려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인지, 여성가족부인지 반문한다. 앞에선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렇지만 정책 기조는 문화부 진흥보다 여가부 규제에 무게가 쏠렸다. 문화부 게임 역기능 해소 예산보다 여가부 게임 역기능 실태조사 예산이 더 많은 게 단적인 예다. 앞에선 ‘진흥’, 뒤에선 ‘규제’다.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든 반 이성주의는 문화 예술분야에서 진전을 가져왔다. 틀에 박힌 계몽주의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런 철학이 국정운영에도 유효한지 의문이다. 4대강 살리기 이후 녹조 현상은 더욱 빈번해졌다. 자연 정화력이 눈에 띄게 감퇴했다. 논리적으로 예측 가능했지만, 눈 감고 외면한 결과다.

이율배반적인 정책의 약점은 정부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R&D 예산이 줄자 입이 무거운 과학자들도 “창조경제에 진정성이 있냐”고 쏘아붙인다. 창조경제는 애당초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아무리 좋은 국정철학도 신뢰를 잃으면 동력을 잃는다. 신뢰는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때 생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는 왠지 미덥지 못하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