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이 통과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를 강화한 경영승계가 막바지에 도달했다. 새로운 삼성으로의 도약을 위한 계열사 및 사업부 재편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19일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 지배구조와 사업 재편 최대 걸림돌이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 마무리되면서 지난 2013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지배구조와 사업재편이 본 궤도에 올랐다”며 “삼성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공고해진 가운데 사업 측면에서 ‘뉴 삼성’에 속도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는 9월 1일자로 출범할 ‘통합 삼성물산’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된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던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 전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배력이 강화되고 경영권 승계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합병 성사로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된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3.4%, 이재용 부회장 0.6% 삼성전자 지분도 보탤 수 있는 만큼 큰 틀에서 지배구조 강화는 완성에 가깝다.
향후 과제는 우선 삼성SDI가 통합 삼성물산에 갖게 될 지분 4.8%를 정리하는 부분이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합병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한 바 있다.
금산분리 요구를 충족하고자 통합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 19.3%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를 정리하는 것도 남아 있는 과제다. 재계는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나 추가 인수합병(M&A) 등 어떤 방식으로든 경영승계 완성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 재편도 보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지난 2년간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에서 웰스토리·건물관리 분사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부문 합병 △통합 삼성SDS 출범과 상장 △삼성에버랜드 상장 △방산·화학 부문 네 계열사 한화 매각 등을 진행했다. 최근 삼성전기가 주력사업을 제외한 부분 분사를 결정하는 등 ‘JY식 사업재편’도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삼성의 주력산업인 스마트폰과 TV 등은 성장세가 약화된 모습이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 이슈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 큰 산을 넘으면서 이제는 새로운 삼성의 비즈니스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관측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잘하는 사업 집중화’에 관심이 높다. 업계는 추후 삼성이 기업 간 거래(B2B),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IoT), 바이오, 금융 산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그룹의 양대 축으로는 역시 전자와 금융이 꼽힌다. 오는 9월 시작할 삼성 핀테크 ‘삼성페이’가 우선 꼽힌다. 갤럭시S6 시리즈 이후 모델부터 전면 적용되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삼성전자 기술이 금융사업 강화로도 연계된 본격 사례다. 안드로이드페이, 애플페이 등과 달리 기존 마그네틱 단말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이달 시범 서비스에서 호평을 받는 등 향후 삼성 중심 핀테크 생태계 구축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삼성증권,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도 잇따라 해외로 진출,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증권은 중국 증권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현지 자본시장에서 자본조달, 운용 능력을 확보하고 있고 삼성생명, 삼성화재도 운용 기금 수익률을 강화하며 지속가능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도 삼성전자 의존에서 탈피해 자생력 확보에 나선다. 삼성전기가 올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모터 사업을 접고 전자가격표시기(ESL), 파워모듈, 튜너 등을 분사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삼성SDI도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추고 전기차용 배터리 등 신사업 집중화가 필요하다.
인수합병(M&A)과 사업 제휴를 활용한 비즈니스 강화도 점쳐진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인수한 업체는 8개로 지난 5년간 삼성그룹 전체 M&A 14건의 절반을 넘는다. 국적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기업에는 적극 투자하며 이전보다 공격적 업계 우군 확보도 주목된다.
삼성그룹이 지난 2010년 발표한 ‘5대 신수종 사업’ 및 삼성전자가 지난 2010년 설정한 ‘비전 2020’ 개편도 기대된다. 신수종 사업은 이차전지, 모바일 솔루션 등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각각 해외사업 철수와 규모 축소를 택해 군살 빼기가 진행되고 있다.
한 기업분석업체 CEO는 “그동안 삼성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안정화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실제 미래 삼성 성장전략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며 “특히 스마트폰 뒤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 발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