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애플은 세계 판매량 1, 2위를 확고하게 유지한 반면에 화웨이, 샤오미, 레노버 등 중국업체가 3~5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LG전자는 2013년 4위에서 6위로 밀려났고, 19위인 팬택은 폐업 위기에 몰렸다. 일부는 이런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단말기유통개선법(단통법)을 지목하고 있다. 일부 스마트폰 제조사는 단통법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단통법은 2000년대 이후 반복된 불법 보조금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됐다. 불투명하고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번호이동 중심의 일부 이용자만 편익을 보는 문제를 개선하고, 빈번한 단말기 교체로 인한 가계통신비 증가와 자원 낭비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원금 상한제와 공시제를 중심으로 이용자에게 지원금이 불투명하고 차별적으로 지급됐던 문제를 해결했다.
또 스마트폰 단말기 시장 축소와 중고단말기 시장 성장에서 보듯, 단말기유통법은 입법취지에 맞게 잦은 단말기 교체로 인한 자원낭비 문제 개선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
물론 단통법으로 소비자 편익이 증가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이전처럼 저렴한 가격에 스마트폰을 구입하기가 어렵다는 소비자 불만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 편익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짜폰에 따라붙던 불필요한 부가서비스나 고가 요금제에 억지로 가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울러 이동통신사 간 단말기 보조금 경쟁 대신 요금할인, 요금제, 서비스 경쟁이 보다 활발해진 측면도 소비자에게 긍정적이다.
단통법에 대한 일부 단말기 제조업체 불만은 입법취지 달성 여부나 소비자 편익 증감과는 다소 동떨어진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규모가 제한돼 판매량이 줄어들었다는 논리다. 그것도 이통사에 보조금 일부를 분담케 하면서 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보조금 지급 규모 제한이 없어지면 판매량은 당연히 증가할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지난해 특정 외산 단말기 판매순위가 상승한 반면에 국내 제조사 판매순위가 하락한 이유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일부 국내 제조사가 애플에는 품질경쟁력에서 밀리고 중국업체에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보조금 지급 규모 제한을 탓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난해 국내 제조사 스마트폰 총판매량 3억7800만대 중 국내 판매량은 4%에도 못 미치는 1500만대에 불과하다.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고 3~4%에 불과한 내수시장 판촉활동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세계적인 경쟁우위로 이어질 리 만무하다. 더구나 단말기 제조사가 국내 단말기 가격을 해외보다 높게 책정해 국내 소비자에게서 이윤을 남겨온 행태를 지속하기도 어렵다.
해외 구매 급증에서 보듯, 정보가 부족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소비자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원금 상한제 폐지가 국내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지 더욱 불확실해졌다는 이야기다.
국내 단말기 제조업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대표 산업이다. 국내 단말기 시장 규모는 1996년 153만대에서 1999년 1000만대를 넘어, 최근에는 2000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1997년 7억2000만달러에 불과하던 국내 단말기 수출액도 2000년 50억달러를 넘어 2014년에는 295억3000만달러로 급성장했다. 18년간 40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이 과정에는 CDMA 기술표준화로 대변되는 정부의 산업육성 정책과 소비자를 포함한 다른 시장참여자의 희생이 함께했다.
소비자는 고가의 국산 단말기를 별다른 선택권 없이 구매해야 했고, 이동통신사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단말기 수요를 부양했다.
이제 제조사는 단말기 보조금에 의존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생각은 접어야 할 때다. 단통법을 탓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디자인과 성능 향상을 바탕으로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스스로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임재진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jaejinim@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