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산업위원장 특별인터뷰]정부 산업정책 `짜깁기`에 그쳐…제조업 살리는 구체적 대안 마련해야

지난달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 선출됐으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산업위원장으로서 치르는 첫 국정감사 준비에 지역(청주) 현안까지 챙겨야 하니 시간이 모자랄 만하다. 노영민 위원장은 바쁜 일정으로 인한 피곤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한번 기합 소리를 내고 기자를 맞았다. 그러고는 이내 날카로운 눈매를 되찾고 정부 산업통상자원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 위원장을 만나 다음 달 국감과 산업통상자원 정책 현안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노영민 산업위원장 특별인터뷰]정부 산업정책 `짜깁기`에 그쳐…제조업 살리는 구체적 대안 마련해야

-올해 들어 7개월 연속 수출이 하락하면서 수출 부진이 심각하다. 정부가 단기, 중장기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최근 세계경제 둔화와 저유가에 따른 수출여건 악화, 엔·유로화 약세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 중국 성장률 둔화와 무역구조 변화,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 등으로 수출 부진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수출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을 들여다보면 민간 기업 투자계획을 정부 것인 양 끌어다 놓거나 고장난 레코드 식으로 기존 대책을 재탕한 사례가 많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주력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묘안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정부 대책은 지난해와 올해 초 기업이 발표한 투자계획을 단순히 짜깁기하는 데 그쳤다.

원인은 제대로 짚었는데 처방으로 나와야 할 환율 안정화, 산업 구조조정 방안 등은 아예 없거나 미미하다. 정부는 전체 산업 체질을 개선하지 않는 한 수출 기초체력을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수출 부진과 맞물려 제조업 위기론도 심상치 않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은 이미 국가 어젠다 차원에서 스마트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 디자인과 3D프린팅 중심의 ‘메이킹 인 아메리카(Making in America)’를, 독일은 보쉬·지멘스 등 첨단 기업과 연계해 사물인터넷(IoT) 기반 가상·현실 통합 시스템 플랫폼 구현 중심의 ‘인더스트리4.0(Industry 4.0)’을 정부 핵심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우리 정부도 ‘제조업 혁신 3.0’ 전략으로 2024년 수출 1조달러 달성과 제조업 경쟁력 세계 4강 진입을 목표로 세웠다. 1만개 공장 스마트화, IoT 등 8대 스마트 제조기술 확보 등이 주요 수단이다.

발표 내용만 보면 우리 제조업 미래는 밝아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청사진이 일선 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국 등 신흥 제조 강국 추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대표 수출품목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 역시 수출 효자품목인 자동차도 이미 생산량 면에서 중국이 우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조선·철강도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그나마 우위를 점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도 언제 선두를 내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제조업이 정말 중요하다면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지 말고 규제 해소 방안이나 산업 지원 등 더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중, 한·베트남 등 굵직한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지만 이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중·일 FTA 등 이른바 ‘메가 FTA’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당장의 현안인 TPP 정부 대응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우리 정부는 2013년 11월 TPP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했지만 아직 참여 선언은 하지 않았다.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협정에 가입한다’는 원칙이다. TPP가 타결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38%, 교역 28%를 아우르는 거대 자유무역지대가 생긴다.

그렇다고 섣불리 결정지어서는 곤란하다. 아직 협정문 윤곽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협정문이 공개된 이후 면밀한 내용분석을 바탕으로 대응책을 세운 다음 참여에 나서야 한다.

수출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우리로서는 안보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무역 질서 확산에 기여하고 수출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높아진 국제 위상에 걸맞게 다자간 무역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국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유통 분야 상생을 둘러싼 불만이 여전하다. 정부가 유통 상생 정책을 취했지만 대형업체와 영세시장, 소상공인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졌다. 대형 유통업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골목상권은 우리 삶의 터전이자 서민경제 중심으로서 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근래 들어 유통 대기업이 서민업종에 진출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2013년 공포된 유통산업발전법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개정됐다.

시행 초기 지역경제에 피해만 주고 시민불편을 가중시킨다는 반대론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 전통시장 매출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마트와 협의를 거쳐 5일장이 열리는 날이나 주중 특정 요일을 의무 휴업일로 정해 양측이 상생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77.9%가 영업시간 제한 취지에 동의했다. 대기업 동반성장 의지에는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높았다. 이제부터라도 대기업은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을 멈추고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협력에 앞장서야 한다.

-에너지 문제로 화제를 돌려보자. 지난달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전력공급 부족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공급과잉으로 전환됐다. 통상적으로 전력설비 적정 예비율은 15% 안팎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력설비 예비율은 16.3%로 공급과잉 상태로 넘어갔다. 전력공급 과잉은 매년 원전 1기 및 민간발전소 건설 급증 등으로 향후 10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전력공급 과잉은 2013년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원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2011년 9·15 대정전과 원전가동 중단 등으로 전력부족 사태가 발생되자 원전건설과 민간발전 허가를 대폭 확대해 전력설비 과잉을 초래했다. 경제성장률 대비 전력소비량은 계속 감소함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경제성장률(GDP) 자체도 실제보다 높게 예측했다. 이에 따라 피크부하 대비 전력예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2020년 30%가 넘어설 것으로 우려된다.

7차 수급계획도 수요 예측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지금 경제성장률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예상한 대로 가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율도 다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꾸 옛날 것을 가지고 수요예측을 해서 과잉공급을 초래한다.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해결책은 무엇인가.

▲전력공급 예측 실패로 초래된 전력공급 과잉으로 발전설비 중단이 불가피하다. 발전 시장은 2∼3년 전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아 민간 기업이 경쟁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대부분 기업이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LNG 발전은 대표적인 적자사업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신설 발전소가 계속 증설된다. 준공과 함께 정지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전력공급 과잉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안정성과 직결된 노후발전설비를 퇴출시키고 신규 발전소 진입을 제한해야 한다.

원전은 올해 신월성 2호기와 신고리 3호기를 비롯해 2024년까지 매년 1기씩 11기가 준공될 예정이다. 이들 원전 준공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수명을 다한 원전은 재가동 없이 폐로 해야 한다. 민간발전도 정부가 전원 믹스로써 최소한의 자구책을 강구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전력공급 과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원외교 특위를 전후해 에너지 공기업이 많은 해외 사업에서 철수했다. 지금은 신규 해외 사업에 굳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 에너지 공기업 해외 시장 개척,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감사원이 해외자원개발사업 성과분석 감사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정부 전망과 달리 향후 최소 46조6000억원 혈세가 추가 투입돼야 한다. 사업 성공 여부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발생한 13조원의 천문학적 손실, 향후 급증하는 추가 부담과 부채로 자원 공기업은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는 평가다. 자원개발 명목으로 엄청난 국고가 투입된 사업이 전혀 실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음이 밝혀졌다. 정부가 추진한 자원확보 정책이 외형만 확대하면서 사업목적이 변질되는 등 부작용이 드러났다. 이로 인한 심각한 국고 낭비가 우려된다.

우리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해외 자원개발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 자원 확보라는 목적이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감당하지도 못할 양적 확대에 주력한 것은 본질을 왜곡한 성과주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 효율성을 점검해 피해 규모를 줄이고, 성과를 최대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계속되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 공방에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들어갈 돈이 얼마인데. 가령 가동 원가가 100원인데 국제시세가 50원이다. 계속 가동해야 하나. 누적적자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민간 기업에 넘기든지 아니면 진짜 파산시키든지 해야 한다. 돈을 끝없이 부어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무슨 돈이 있다고. 여당도 문제점 다 알고 있다. 결국 앞으로 해외 자원개발 후유증이 터지게 돼 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다음 정부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만 할 수는 없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