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반도체 기업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려는 벤처캐피털(VC)은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투자를 제안합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으면서 현지 반도체 관련 기업 시가총액은 고공행진이다. 이들은 자금력으로 세계 곳곳의 반도체 기업을 탐색한다. 기술 유출을 우려해 호락호락 투자를 받아들이는 기업은 많지 않지만 중국 기업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 기업이 거액을 투자한 다음에 필요한 기술만 습득하고 3~5년 뒤에 이른바 ‘먹튀’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국내 중소 반도체 기업 현실은 사면초가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신기술에 눈독을 들이면서도 정작 투자나 인수는 꺼린다. 협력을 무기로 핵심 기술과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중소 협력사가 중국에 물건을 판매하려 하면 기술·정보 유출을 문제삼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국내 장비사에 OLED 장비 구매를 요청하자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사가 중국에 장비를 팔지 말라고 압박을 했다. 국내 기업 의존도가 높은 장비 제조사 입장에서 좋은 해외사업 기회를 포착했지만 결국 시장을 포기하는 곳이 속출했다. ‘갑’의 원성을 모른 척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국내 수요가 없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중국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올랐지만 마냥 반가운 분위기는 아니다. 그동안 개발한 기술이 더 큰 시장에서 빛을 발하고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해외 진출을 위해 전략적으로 외국 기업이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국내 반도체 투자 시장이 중국 투자자금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 중국 자금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에 닥친 기업이 많다.
중국이 국내 반도체 중소기업을 노리는 것은 경쟁력 있고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숨은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열악한 반도체 후방산업과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는 게 메모리 위주로 성장한 한국 반도체 산업이 균형을 유지하고 전체 반도체 생태계가 고르게 성장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