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창의적 융합신기술 개발이 화두인 요즘, 연구개발을 뜻하는 R&D를 ‘Research & Development’가 아니고 ‘Risk & Danger’라고 한다.
연구개발해 봐야 세상 변화 속도가 하도 빨라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 나아가 신제품으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자조적 표현이다.
그렇다고 좋은 기술이 반드시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시장을 선도할 만한 큰 기술은 좋은 기술일 수는 있으나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성공할 때까지의 자금 압박을 견뎌내지 못 한다. 오히려 시장 흐름에 발맞춘 후발주자가 성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 눈높이에 맞는 기술이 팔리는 기술이고 보면 시장 흐름보다 반 발짝 앞선 기술개발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즉 ‘좋은 기술이 팔리는 기술이 아니라 팔리는 기술이 좋은 기술’인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연구개발을 거쳐 시장에서 성공할 만한 획기적인 융합신제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시장 눈높이 보다 더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시장에서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신기술 신제품이기에 기존 인증으로는 인증을 내어줄 수도 없다. 적합한 인증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정부도 규제개혁을 위해 규제 정당성과 존재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규제는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불필요한 규제를 건별이 아니라 단위별 하향식으로 일괄 처리하는 ‘규제 기요틴(guillotine)’, 인증기준 없는 융합신제품은 ‘산업융합 신제품 적합성 인증제도’, 나아가 기존 제도로 인증하기 힘든 융합 신기술은 제품 개발부터 해당 제조사와 정부가 해당 인증기준을 함께 개발해 출시단계에서 바로 인증해주는 미국형 신속인증제도인 ‘이노베이션 패스웨이(innovation pathway)’ 도입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시장 변화에 비해 규제개혁 추진속도가 너무도 느리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지금은 불필요한 규제가 예전에는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기에 세상 변화에 따라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해야 하는 것인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고구마 줄기나 칡뿌리처럼 얽히고설켜 참 깊고도 넓게 퍼져 있는 이해 집단 간 난맥을 보게 된다.
국가 차원의 신성장동력을 위한 융합신기술 개발과 신시장창출 그 대의를 위한 서로 간 이해가 절실하다.
기술도 제품도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규제 또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결국 사람끼리 풀어야 한다. 서로 오해를 이해로 바꾸고 교감하기 위한 핵심의 단어가 소통이다.
소통은 요즘 같은 융합시대에 더욱 중요한 단어지만 이상하게도 IT가 발달할수록 SNS가 보편화될수록 오히려 역으로 더 어려워지는 것이 사람 간 소통이 아닌가 싶다. 기술이 물리적 사람 간 거리를 좁혀주고 일상을 편하게 하지만 기술 속 가상의 만남이 아닌 땀내 나는 직접 접촉을 가슴과 오감은 기억하고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소통이 안 되는 불통의 시대, 오죽하면 소통은 ‘소하고 통하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할까.
그러나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규제개혁도 사람이 한다. 부딪히다 보면 그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소통은 멀리 있지 않다. ‘등잔 밑’에 있다.
손웅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소장 shon@ki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