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없는 재난망 현실화···기재부, 각 기관 내년 신청예산 삭감

기획재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단말기를 각 기관이 별도 구매토록 한 데 이어 내년 예산을 상당 부분 삭감하기로 했다. 내년 1차연도 본사업(확산사업) 일정도 지연될 수밖에 없으며, 현장 테스트 과정에서 단말기 없이 통신품질을 평가해야 하는 비상식적 상황도 연출된다.

31일 국민안전처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내년에 단말기는 거의 쓰지 못할 것으로 판단, 단말기 예산을 대부분 삭감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시범사업 지연에 따라 내년 확산사업이 제대로 마무리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확산사업이 내후년 봄까지 진행되면 내년 예산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재난망 단말 관련 예산은 지금 논의 중”이라며 “9월 11일 국회에 안을 제출하는데 그 이전에는 대답할 게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기획재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단말기를 각 기관이 별도 구매토록 한 데 이어 내년 예산을 상당 부분 삭감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기획재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단말기를 각 기관이 별도 구매토록 한 데 이어 내년 예산을 상당 부분 삭감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재난망은 올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내년 확산사업, 2017년 완료사업으로 나뉘어 구축된다. 내년엔 세종시와 충청북도 등 9개 시도에 망이 구축된다. 평창·강릉·정선에서 소규모로 벌이는 시범사업과 대규모 장비가 필요한 확산사업 환경은 확연히 다르다. 소방·경찰 등 관련 기관과 사용 단말 규모에도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확산사업 완료 시점이 내후년 상반기로 지연되더라도 미리 단말기를 일정 수량 확보해 필드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산을 2017년에 집행한다면 주문과 제작 등 여러 절차를 고려했을 때 일러도 2017년 가을 이후 단말기 공급이 가능하다. ‘단말기 없는 재난망’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셈이다.

단말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은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한 단말기 제조사 관계자는 “올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는 실제로 물건 납품에 2년을 기다리며 생산시설을 놀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예산을 집행하지 않을 계획이 아니라면 그 시기를 앞당겨서 제조사 제품 개발 의지를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안전처는 기재부 요구에 따라 재난 관련 주요 기관에 공문을 보내 단말기는 각 기관 예산으로 충당할 것을 요청했다. 예산을 기관이 각각 요청하면 국민안전처가 일괄 구매하는 것보다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기재부 판단이다. 기관 별도 구매에 이어 예산 집행마저 연기되자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 방침대로라면 2017년이 되더라도 전체 단말기 예산(21만대, 약 4000억원)을 모두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존 노후장비로 인한 위험은 계속 방치되고 필요 수량을 구매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큰 기관을 제외하면 상당수 기관에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실제로 재난망 주요 사용 기관인 경찰은 이번 예산 신청에서 180억원(약 9000대)을 신청했다. 경찰에 필요한 단말기는 4만8000대다. 20%도 안 되는 수량을 신청한 것이다. 기관 별도 신청으로 기존 예산을 쪼개 써야 하기에 많은 수량을 신청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기재부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을 계획이다. 모든 재난 기관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