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장수기업의 성공비결-바커(WACKER)

독일 남부 작은 시골 마을 ‘브룩하우젠’에서 출발한 소재 기업 바커(WACKER Chemie AG)는 지난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으로 유명하다.

장수 비결은 독자적인 연구개발(R&D)과 판매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소재 산업은 특성상 원재료를 기반으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창출할 수 있다.

바커는 원재료에 대한 지속적인 R&D로 고부가가치 상품은 물론이고 신규 사업을 추진해 회사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야금실리콘, 에틸렌, 메탄올, 암염 등 기초 소재 4가지를 중심으로 바커가 만드는 제품은 총 3500여종에 달한다. 세계 100여개국 3500여 고객사가 바커 제품을 사용한다.

바커 공장 전경
바커 공장 전경

이 회사는 실리콘 시장에서 세계 시장 상당부분을 점유한 업계 강자다. 회사 전체 매출 80%가량이 실리콘을 성분으로 하는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 에어백 및 의료용 실리콘 등에서 나온다. 태양광, 전자, 자동차 등 거의 전 산업 영역에서 이 회사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나머지 20% 매출은 에틸렌과 비닐아세테이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제품에서 나온다.

바커는 지난 1903년 알렉산더 바커 박사가 만든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에서 첫 발을 뗐다. 그는 주변에 뜻이 맞는 과학자들과 ‘혁신(Innovation)’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로 이 회사를 세웠다. 비록 회사지만 학자들이 모인 연구 중심 기구와 비슷했던 셈이다.

11년 뒤인 1914년, 정식으로 바커 그룹이 출범했다. 당시 알렉산더 바커 박사는 인생을 정리할 때인 만 68세 노인이었다. 그간 연구 성과를 현실로 내보이겠다는 목적이었다. 이후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는 바커 그룹 모태이자 중심이 됐다. 지금도 그룹 내에서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기초 R&D는 이 회사가 전담한다. 전자화학 컨소시엄 유한회사가 초기 내걸었던 ‘혁신’이라는 기치는 전체 그룹의 근본 가치로 굳어졌다.

뿐만 아니다. 최근엔 현지화 전략과 발맞춰 R&D센터를 세계 각국에 개소하는 중이다. 대개 대기업은 본사 인근에 R&D센터를 두고 각국에는 영업, 서비스 등을 담당하는 지사만 세우지만 R&D 역량을 각 지역별 산업 특성에 맞게 쪼갰다. 고객사와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제품을 현지 시장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R&D 때부터 최적화했다는 얘기다.

R&D 생태계 프로세스도 주목할 만하다. 그룹에서 세계적 트렌드와 시장 요구에 맞춰 R&D 방향을 설정하면 뮌헨에 위치한 중앙연구소에서 이를 조정해 적합한 과제를 각 지역 개발센터에 보낸다. 설립 초부터 R&D 프로세스를 체계화해 효율성을 확보했고 이는 이 회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한국도 이 중 하나다. 바커는 지난 2012년 판교에 ‘실리콘전기전자기술연구소(CoEE)’를 세웠다. CoEE는 바커그룹 실리콘·폴리머 등 R&D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발광다이오드(LED), 광학, 조명용 실리콘, 터치스크린(TSP) 등 한국 기업이 수요처인 소재를 주로 연구한다.

CoEE는 출범한 뒤 실리콘 NRI(Negative Refractive Index) 봉지재, 실리콘 렌즈 소재, 다목적 RTV-1(실온 경화성) 실리콘 접착제, 광학 접착용 실리콘 등을 개발했다. 최근엔 TSP업계 수요를 감안해 차량·옥외 디스플레이 등 외부 환경 노출에 강한 다이렉트 본딩용 실리콘 광학투명접착제(OCR)를 출시했다.

바커 로고.
바커 로고.

바커는 최근 중국에는 건축용, 일본에는 자동차용 에어백 소재 개발센터를 각각 신설했다. 이 회사의 전 세계 기술연구소는 21곳에 이른다. 아시아 지역에선 CoEE를 포함해 9개 센터가 있다.

R&D와 고객 서비스를 연계한 ‘바커 아카데미(WACKER ACADEMY)’도 강점이다. R&D와 판매를 이어서 구축한 또 하나의 생태계다. 고객사가 제품과 솔루션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관련한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기술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상담을 해주는 것도 바커 아카데미에서 진행한다. 이 회사에게 고객사는 단순 납품처가 아닌 서로 성장하는 ‘파트너’다.

조달호 바커케미칼코리아 대표는 “설립 초부터 만들어왔던 체계적 R&D 생태계와 고객사와의 연대, 혁신에 대한 열망은 지금까지 바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업 경쟁력의 근간”이라며 “내일의 솔루션을 창조한다는 설립 모토와 함께 이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