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핵심기술’ 지정·변경에 일몰제를 도입한다. 기술 발전 추세를 제때 반영해 산업현장과 괴리를 줄이는 차원이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기술 보호와 규제 완화 사이에서 최적의 절충점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1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핵심기술 일몰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마지막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술·경제적 가치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 유출 시 국가 안전과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산업기술을 정해 놓은 것이다. 전기전자(11개)·정보통신(8개)·자동차(7개) 등 총 47개 기술이 해당된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해당 기술이나 제품을 수출할 때 사전 승인 또는 신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가핵심기술 공정에 기반을 둔 해외 공장에 신·증설 투자를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가핵심기술 제도는 기술 유출 방지뿐 아니라 제조업의 무분별한 해외 생산 증가를 억제하는 기능도 지녔다. 기술 기준과 신고·승인 처리과정을 엄격히 할수록 기업 해외 설비 투자 작업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해외 공장 신증설이 대표적 검증 대상이다.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 제도 취지는 그대로 유지하되 급속하게 바뀌는 기술 변화 추이를 반영하고자 일몰제를 도입한다.
종전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후 관련 산업이 발전하더라도 신속한 반영이 쉽지 않았다. 산업부는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국가핵심기술 기준을 2010년 이후 5년 만에 60나노, 50나노에서 40나노, 30나노 이하로 각각 완화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20나노대 공정을 운영하고 기존 기준이 해외에서도 보편화된 것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로서는 국가핵심기술을 지정·변경하는 산업기술보호위원회(위원장 산업부 장관)를 수시로 열기 어려운데다 뚜렷한 일정 기준이 없다 보니 개정 작업을 정례화하기 어려웠다.
국가핵심기술 제도가 개정되면 앞으로 기술 하나하나에 1~3년씩 일몰 기한이 부여된다. 정부는 일몰 기한이 도래하면 산업계 요구가 없더라도 해당 기술 발전 및 수출 현황 등을 분석해 기간연장, 폐지, 기준 변경 등 조치를 취한다.
일몰제가 도입되면 국가핵심기술 지정·변경 정례화가 가능해지지만 자칫 기술 보호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보수적 운영이 요구되는 국가핵심기술 규정에 유연성을 확대하면 기술 유출과 해외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주기적으로 일몰 여부를 검토하되 실제 유효기간 종료와 기준 변경은 최대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기술은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데 관련 규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일몰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향으로 국가핵심기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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