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30>‘디지털 멍에’ 지우는 김호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대표

김호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대표는 “인터넷 세상에 망각은 없다”며 “인터넷에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멍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김호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대표는 “인터넷 세상에 망각은 없다”며 “인터넷에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멍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디지털 멍에. 디지털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 동영상은 잘못된 내용이라도 남는다. 악성댓글이나 동영상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람도 있다.

국내 최초로 디지털 멍에 삭제 사업을 시작한 김호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대표를 9월 1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넷은 편한 만큼 위험성도 높다”며 “요즘 청소년은 인터넷을 놀이터로 생각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누드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는 일이 있는데 그런 사진은 절대 찍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인터넷 세상에 망각(忘却)이란 없다. 언젠가 ‘삶의 멍에’가 될 수 있다”며 “국회가 하루빨리 잊힐 권리를 보장하는 명확한 삭제 기준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멍에’ 지우기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2008년 모델 에이전시 회사를 운영하던 중 켈로그 광고에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를 출연시킨 적이 있다. 약간 통통한 어린이였는데 광고가 나간 후 인터넷에 또래들이 ‘네가 연예인이면 나도 연예인이다’ ‘역겹다’ 같은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악성댓글을 본 아이는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악성댓글을 삭제하기 위해 내용을 파악해 포털업체에 직접 삭제요청을 했다. 카페나 게시판의 심한 비난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노력으로 악성댓글이 사라지자 아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광고주도 좋아했다. 이를 본 모델이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악성댓글도 해결해 달라고 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하다 보니 이게 내 본업(本業)이 됐다.

그는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88학번으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다. 그러다가 모델회사에서 캐스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캐스팅한 연예인은 송혜교, 전지현, 차승원, 김규리, 추상미, 안재모 등 인기인이 많다. 모델업계에서 잘나가던 그는 초등학생 악성댓글 해결 이후 2011년 디지털 멍에를 지우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업자 등록은.

▲2011년 11월 서비스 사업자로 등록을 했다.

- 하루에 문의 건수는 얼마나 되나.

▲전화는 10건 정도다. 상담게시판에 하루 20여건의 글이 올라온다.

-서비스 대상과 범위는.

▲개인과 연예인, 기업체로 나눌 수 있다. 개인은 유출된 사진과 동영상, 글 삭제다. 연예인은 악성댓글과 근거 없는 허위사실 게시물을 삭제한다. 기업은 주로 온라인 게시물 모니터링과 평판(評判) 관리를 하는데 허위사실이나 악성루머를 삭제해 준다.

-회원은 얼마나 되나.

▲개인 1487명과 기업 222개, 청소년 1520명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어떤 연령층이 가장 많나.

▲청소년층이다.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3년 3월부터 1년간 청소년 16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진과 동영상이 45%, 사생활 비방글 23%, 부적절한 게시물 15%, 욕설 10%, 기타 7%였다. 호기심으로 찍었던 누드사진이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돼 피해를 본 사례가 많았다.

-어떻게 악성댓글이나 동영상을 찾나.

▲의뢰인이 준 문자나 영상 정보를 우리가 개발한 검색 툴에 입력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찾는다.

-자체 검색 툴을 개발했나.

▲사업시작 후 2012년 프로그램 개발업체와 9억여원을 들어 ‘산타로봇’이라는 검색 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13년 3월에 BM(비즈니스모델)특허를 출원해 2014년 7월 특허를 받았다. 산타로봇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와 관련한 기사나 블로그, 악성댓글을 수집할 수 있다. 이를 긍정과 부정 데이터로 분류해 이 중 삭제해야 할 부정 데이터를 찾는다. 이 일은 직원들이 직접 한다.

그는 ‘멍에 삭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모델사업으로 모은 재산 27억원을 다 밀어 넣고도 상당 액수 빚을 졌다고 한다. 그가 컴퓨터에서 보여준 삭제요청을 받은 사진과 동영상은 디지털 악마의 그림자였다. 그런 동영상을 가족이나 친척이 본다면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연령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 2학년까지다. 이들은 인터넷을 놀이터로 생각한다. 사진과 글을 생각 없이 올리고 욕설도 한다. 나중에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청소년은 주로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상담을 한다. 만나기를 꺼린다. 전화로 울면서 ‘어른이 되면 돈 줄 테니 삭제해 달라’고 매달릴 때는 가슴이 아프다. 청소년 관련 댓글이나 사진, 동영상은 무료로 내용을 삭제해준다.

-회사 경영에 부담이 되지 않나.

▲부담이 된다고 청소년에게서 어떻게 돈을 받나. 그들 한 달 용돈이 3만~5만원이다. 정부에 1년 6개월 전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관련 부처인데 서로 미룬다. 청소년을 위해 실비 지원을 해 주기를 희망한다.

-얼마를 지원해 주길 바라나.

▲청소년 글이나 동영상을 삭제하는 직원 인건비라도 지원해 주면 좋겠다.

-현재 직원은.

▲38명이다. 프로그램개발팀과 모니터링팀, 악성댓글이나 동영상 삭제팀, 법무팀으로 나눠 일한다. 법무팀에 상근 변호사 한 명을 두고 외부 법무법인과 계약을 체결했다.

〃어떤 방법으로 내용을 삭제하나.

▲법무팀에서 삭제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삭제가 가능하다면 삭제요청 공문을 각 포털 측에 보낸다. 어른은 계약을 하고 위임장을 받아 일을 시작한다.

-비용은 얼마인가.

▲사안에 따라 5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다. 기업이나 연예인에게서 초기비용을 받고 월 관리비를 별도로 받는다. 기업은 평판관리가 주 업무다. 신제품 하자나 경쟁사 비방글, 악의적인 소비자 글이 관리대상이다. 의뢰를 받으면 기업평판관리 리포트를 제출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비용을 낼 수 없어 그냥 가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외국에도 ‘디지털 멍에’를 지우는 업체가 있나.

▲덴마크에 디지털평판관리 전문업체인 레퓨테이션닷컴(reputation.com)이 있다. 미국에는 리무브 유어 네임(remove your name) 같은 ‘디지털 세탁’업체들이 2∼3년 전부터 성업 중이다.

-범죄자가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한 적은 없나.

▲그런 요청이 있었다. 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난 사안이 아니면 삭제할 수 없다. 범죄기록을 삭제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각종 잘못된 정보, 허위정보가 그대로 남아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잘못된 기록을 지우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한국은 정보통신망법과 정보보호법이 있지만 미비하다.

하루빨리 잊힐 권리를 보장하는 명확한 삭제 기준을 입법화해야 한다. 한국은 ICT강국이다. 법제도는 왜 다른 나라를 참고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 분야를 선도해야 한다.

-인터넷 이용 시 주의할 점은.

▲요즘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누드 사진이나 성관계 동영상을 찍는 일이 많다. 위험한 일이다. 언제 유출될지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이런 사진은 찍지 않아야 한다. 인터넷에 글을 쓸 때도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 동영상은 평생 꼬리표처럼 자신을 따라 다니는 멍에가 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망각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점은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

-국가도 평판관리가 필요한가.

▲당연하다.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한국에 대해 잘못 쓴 글이나 한국을 비방하는 글이 다수다. 이런 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디지털 강국 한국 이미지가 개선된다.

-구상 중인 서비스가 있나.

▲현재 준비 중이다. 디지털시대에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업비밀이라며 기자에게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사업내용을 설명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신종 아이템이었다.

-좌우명과 취미는.

▲나는 낙천적이다. 아직 좌우명은 없다. 취미는 잘하지 못하지만 골프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