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차대전을 다룬 ‘퓨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보면 셔먼이란 미국 전차는 보기에도 엉성하고 실제로 독일 타이거 전차에 비교해서 대포도 작고 뭐 하나 뛰어난 게 없어 보인다.
타이거는 셔먼전차 75㎜ 포보다 훨씬 강력한 88㎜ 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타이거전차는 88㎜ 포로 2㎞ 밖 셔먼을 격파할 수 있었다. 장갑도 전면 장갑만 100㎜에 달해서 셔먼 75㎜ 주포로는 명중해도 튕겨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허접해 보이는 셔먼이 독일 신기술 집결체인 타이거를 이겼다. 도대체 어떻게 이 허접한 셔먼이 최첨단 타이거를 이길 수 있었을까.
타이거는 바로 최첨단인 자기 자신에 문제가 있었다. 제작비가 셔먼의 최소 석 대 가격이 넘었고 제작 기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방어력을 극대화했던 장갑은 그 자체 무게 때문에 고장이 나는 부품과 막대한 기름 소모량까지 기동전을 펼치는 데 많은 장애가 따랐다.
셔먼은 구조가 아주 단순했다. 초간단 설계로 저렴한 제작비와 빠른 제작기간으로 타이거 전차 한 대 생산하는 기간에 셔먼전차는 열 대도 넘게 만든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전차는 완벽해야 한다’는 독일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전차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룩한 미군은 셔먼을 싸고 빨리 만들어 연합군 전체가 공유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핀테크라는 화두 아래 수많은 업체들이 경쟁 체제에 들어섰다.
핀테크 도입과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안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마치 타이거 전차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독일군처럼 우리나라 핀테크를 향한 노력을 보면 생체인식부터 각종 암호 프로그램 등 온갖 보안 기술로 무장하고 어떤 해킹 공격에도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개별 노력만 분주하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떻게 기술을 공유해 나가며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기본적 발상이 아쉽다.
핀테크 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와 거래 대금이 오가는 미국 페이팔이 떠오른다. 국내 사용자가 페이팔을 처음 이용할 때 가장 놀라는 것은 이렇게만 해도 금융거래가 이루어질까 하는 원인 모를 불안감과 궁금증일 것이다.
단순히 페이팔ID와 비밀번호만으로 로그인을 한 뒤 결제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수 없이 깔고, 보안인증서를 경유하고, 부팅을 반복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겨우 거래가 이루어지는 국내 금융 결제 방식과 너무 비교가 돼서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셔먼 전차처럼 허술해 보이는 페이팔 결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우리와는 가장 다른 원칙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보안 책임을 어디에 두는지 문제다.
페이팔은 보안 우선 책임이 페이팔, 회사에 있다. 따라서 모든 보안 관련 프로그램이나 기술은 서버단에서 대비하고 방어하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은 별도 프로그램이나 방어 기술을 개인 PC에 설치해야 할 의무가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이들 회사는 분쟁조정 관리 인력이 구매자, 판매자 간 중재업무를 수행한다.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고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우선 처리한 뒤에 사후 디지털포렌식 등 기법을 활용해 실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보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살펴보면 보안 우선 책임을 개인 컴퓨터에 둔다. 개인이 사용자단에서 공인인증서, 휴대폰 인증, ARS 인증 등 인증작업 보안절차를 진행해야 함은 물론이고 금융기관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보안 프로그램 설치 등이 모두 개인 사용자단에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최근 보안 기술 발전은 눈부시다. 홍채·지문 인식, 목소리, 복합암호 등등 기술 발전은 끝이 없다. 그런데 결론은 어떤 보안 방어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타이거 전차가 전면 장갑으로 무장해도 결국은 셔먼의 전차포에 관통 당하듯 해킹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보안 시스템은 있을 수 없다.
보안은 투자라는 원칙 아래 개별 기업이 실시하는 보안 노력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 아래, 보안의 책임을 개인 PC단에서 기업 서버단으로 옮겨 가는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차는 완벽해야 한다는 독일 노력이 전차는 대량 생산되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룩한 미국에 패했듯이 근본적인 보안 발전을 이룩하기 어렵다.
서민석 이베이코리아 상무 mseo@e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