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영토를 바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지난 6월 초 국회 제출된 지 넉 달이 흘렀다. 8월 말 우여곡절 끝에 여당 단독으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된 것이 고작이다. 최대 교역국이자 수출 상대국인 중국과 자유무역시대를 여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연내 발효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경제활성화와 수출 회복 수단으로 한중 FTA를 조기 발효해야 한다는 정부·여당과 달리 피해대책 보완을 요구하는 야당 주장이 엇갈린다. 10월 여야정 협의체 출범을 계기로 논의를 가속화해 하루빨리 한중 FTA 준비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1일 FTA에 정식 서명했다. 2012년 5월 협상 개시 후 3년 만이다. 양국 통상 장관은 “한중 FTA가 상호 교역·투자 확대뿐 아니라 정부·기업 간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는 전방위 협력 플랫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4단체와 업종별 단체로 구성된 FTA민간대책위원회는 정식서명 직후 한중 FTA에 기대감을 표시하며 조속한 발효를 촉구했다.
한중 FTA는 인구 14억에 달하는 중국 거대 시장을 제2 내수 시장으로 선점할 수 있는 측면에서 어느 FTA보다 기대가 높다. 한중 FTA에 따른 연간 관세절감 예상액은 54억4000만달러로 한미 FTA(9억3000만달러)의 5.8배, 한·EU FTA(13억8000만달러)의 3.9배에 이른다.
정부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해양수산개발원·한국노동연구원·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6개 연구기관을 통해 실시한 ‘한중 FTA 영향평가’에 따르면 발효 후 10년간 실질 GDP가 0.9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 후생은 같은 기간 146억2600만달러 증가하고 5만3800여개 일자리가 신규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별 영향은 엇갈린다. 제조업 생산은 단기적으로 감소 구간을 거치다 발효 후 15년부터 성장세로 올라선다. 발효 후 20년간 연평균 1조390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농림업과 수산업은 일정 부분 생산감소가 불가피하다. 한중 FTA 발효 후 20년간 농림업은 연평균 77억원, 수산업은 104억원 생산감소가 점쳐진다.
정량적 수치를 포함해 통관·시험인증·지식재산권 등 비관세장벽 해소에 따른 정성적 효과까지 감안하면 전체적으로는 한중 FTA가 우리 경제에 득이 된다는 분석이다. 다만 제조업과 농수산업 등 업종별로 득실이 엇갈리다 보니 한중 FTA가 실제 발효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중 FTA는 통상절차법에 따라 마지막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9부 능선을 넘었지만 마지막 단계가 가장 힘든 형국이다. 지난 6월 초 국회 비준동의안이 제출됐지만 석 달 가까이 지난 8월 말에야 소관 상임위에 상정됐다. 그나마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 ‘반쪽’ 상정이었다.
여당은 한중 FTA에 적극적이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최근 현안 브리핑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외국과 교역로를 확보하는 FTA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야당에 FTA 비준에 적극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야당은 ‘선대책, 후비준’ 원칙이다. 한중 FTA를 전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효에 앞서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은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농수산업 피해 규모를 철저히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피해업종 보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TA로 이점을 누리는 업종(제조업)이 피해업종(농수산업)과 이득을 나눠 가지는 무역이득 공유제 법제화도 줄기차게 요구했다.
여야가 10월 한중 FTA 비준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며 한발 다가섰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한중 FTA는 매년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선형철폐 방식을 취했다. 매년 일정한 비율로 관세를 인하하고 최종 연도에 관세가 사라진다. 올해 말에 발효하더라도 즉시 1년차 관세인하 효과가 발생한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2년차 관세인하가 적용된다. 올해 안에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하는 것과 내년 발효 사이에 차이가 크다.
여야가 자칫 협의체 구성 원칙을 놓고 대립하기라도 하면 본론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시간이 훌쩍 지나갈 수 있다. 협의체 구성 이후에도 한중 FTA 영향 분석과 보완 대책 수립을 신속히 진행하지 못하면 연내 발효가 어려워진다.
한중 FTA 비준 동의안은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FTA와 연계 제출됐다. 한중 FTA가 주춤하면 제2 생산 거점이자 주요 수출국으로 떠오르는 베트남과 FTA 발효도 차질을 빚을 상황이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신속히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정부는 한중 FTA 발효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플랜트·기계 등 중국 수출 상황이 심각하다”며 “한중 FTA를 연내 발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