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온다. 주력산업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수출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다. 제조업은 선진국에 밀리고, 중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다. 국내 제조업 혁신도는 일본 76%, 독일 46%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홀로 서기 어려운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부실 기업이 국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발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은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고자 마련됐다. 선제적 기업 사업재편을 도와 부실화를 막고 나아가 새로운 성장 기반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하 기업활력법)은 지난 7월 이현재 의원을 포함한 27명 의원이 발의했다. 정부가 비슷한 취지로 법 제정을 시도하다 의원입법으로 옮겨졌다.
기업활력법은 정상기업이 평상시 선제적으로 행하는 사업재편을 정부가 승인,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기업이 급변하는 대내외 시장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유도해 부실화를 사전 차단한다.
정부가 여러 사업재편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주로 부실기업이나 부실징후기업을 사후 구제하는 식이다. 정상기업이 선제적으로 행하는 사업재편은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들다. 오히려 복잡한 법적 규정과 절차가 신속한 사업재편을 가로막는 실정이다.
일단 기업이 부실화하면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1997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실채권매입에 투입된 공적자금만 38조5000억원에 달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업활력법은 부실기업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던 사후 구조조정 틀에서 탈피해 기업 자발·선제적 사업재편을 촉진한다”며 “제조업 체질 개선과 산업구조 고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활력법은 크게 사업재편지원제도와 규제애로해소제도로 나뉜다. 사업재편지원제도는 정상기업이 평상시 선제적으로 행하는 사업재편을 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합병 등 조직재편과 함께 사업혁신으로 공급과잉을 해소해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기업’이다. 기본적으로 과잉공급 분야 기업이 대상이다. 과잉공급은 해당 업종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또는 향후 공급 증가와 수요 감소로 지속적 경영상황 악화가 예상되는 상태를 말한다. 적용 대상을 엄격히 규정한 것은 지원역량을 집중하면서 불필요한 특혜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기업 규모와 업종 제한은 없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희망 기업은 주무부처 신청과 심의 절차를 거쳐 사업재편계획을 승인받아야 한다.
구체적 지원 내용은 상법 관련해서는 △소규모사업 분할 시 주주총회 대신 이사회 결의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소규모분할제도’ 신설 △합병대가가 발행주식 총수 10% 이하인 소규모합병과 소규모분할합병 요건을 20%로 확대 △합병·주식교환·영업양수도 등을 위한 주총 소집 기간을 2주에서 1주로 단축 등이다.
공정거래법 관련 특례로는 △기업결합심사 신고창구 단일화 △지주회사 부채비율 완화 △지주회사 비계열사 출자규제 완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순환출자·상호출자 해소 유예기간 연장 등이다.
규제애로해소지원제도는 규제불확실성해소제도와 기업제안방식규제개선제도로 구성된다. 규제불확실성해소제도는 기업이 사업재편 전에 법령해석이나 규제 유무를 주무부처에 확인, 사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사전 제거한다.
기업제안방식은 사업재편 기업이 요청하면 주무부처가 부작용을 차단하는 범위에서 규제특례를 허용한다. 앞서 규제불확실성해소제도에 따라 사업재편 추진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된 기업을 위한 제도다.
기업활력법 취지와 필요성에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근로자 100인 이상 중소기업 14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65.5%가 일본 ‘산업경쟁력강화법’ 같은 법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부정적 답변 비중은 11.7%에 그쳤다.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일본이 자국 기업 사업재편을 돕고자 지난해 시행한 법이다. 기업활력법 벤치마킹 대상이다.
문제는 세부 내용과 입법 일정 의견 차다. 야당은 기업활력법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아직 공식 대응하지는 않고 있지만 출자 규제 완화 등이 일부 재벌 기업에 특혜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차원에서 기업활력법 내용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업재편 지원 대상이 너무 협소하고 지원 수준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은 13일 국회에서 열린 기업활력법 공청회에서 “지원 대상을 과잉공급 산업으로 한정하면 제한적이어서 실익이 별로 없다”며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예외적으로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야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한섭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존 사업전환법 이상의 금융·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며 “합병·분할 후 설비투자와 운전자금뿐 아니라 합병자금에도 금융지원이 가능하도록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여당과 정부는 국내 제조업 경쟁력 위기가 심화되는 만큼 연내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회 일정상으로도 올해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를 놓치면 내년 재추진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현재 의원은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적극 반영할 것”이라며 “연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시행되도록 정부·경제단체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