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우리글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어법을 무시한 국적불명 번역 투와 비속어, 조어가 판친다. 우리글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쓸 수 있을까. 569돌 한글날을 앞둔 지난 10월 5일 오후 우리글 지킴이 이수열 선생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 만났다.
선생은 47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한 후 정년 퇴임했다. 이후 20년 이상 우리글 지킴이로 한길을 걸어왔다. 올해 여든 일곱 살. 틀리기 쉬운 내용을 정리한 책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는 글 쓰는 사람들 지침서다. 1999년 초판이 나온 후 2014년에 17쇄가 나왔다.
선생은 ‘빨간 펜’으로 유명하다. 휴대폰과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틀린 내용을 1990년대 신문사 교열기자처럼 빨간 펜으로 어법에 맞게 고쳐 필자에게 우편으로 보낸다.
선생은 이튿날 보낼 편지 세 통을 보여 주었다. 받는 사람을 보니 정부 장관급 위원장과 국립대학 교수 둘이다. 빨간 펜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 고위 공직자와 저명한 언론인, 대학교수, 소설가 같이 글로 먹고사는 사람도 글을 잘못 쓰면 빨간 펜 편지를 받는다. 책상에는 손때가 묻고 닳은 국어대사전 네 권과 우표를 붙인 편지 봉투 한 묶음이 놓여 있다. 빨간 펜으로 고친 글을 넣어 보낼 편지 봉투다.
선생은 “2004년 국회를 통과한 ‘국어기본법’을 ‘국어보호법’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 프랑스는 ‘프랑스어 정화법’을 제정해 광고와 상표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했고 어기면 처벌한다”고 주장했다.
선생은 “헌법도 정확한 우리글로 다시 쓰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국회선진화법’이 뭐냐, ‘선진국회법’이라고 해야지. 문법에 맞지 않는 법안을 만들면 나라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일과가 궁금합니다.
▲아침 6시께 일어나요. 책이나 신문을 읽고 틀린 내용을 고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매주 수요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22년째 교열 강의를 합니다. 초창기 소문이 나 두 반을 운영했는데 요즘은 수강생이 줄었어요. 전철 타고 다녀요. 두 시간 강의인데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릅니다. 건강할 때는 주 세 번씩 북한산에 올라갔어요. 요즘은 집 안에서 자전거를 탑니다.
-고교 2학년 나이에 교사 생활을 시작하셨군요.
▲독학을 해 열 여섯 살에 교원자격 시험에 합격해 도(道) 학무과에 갔더니 인사담당자가 ‘키가 더 자라면 오라’고 하더군요. 키가 작아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과 구분이 안 됐습니다. 모교에 갔더니 교장 선생님이 교생으로 채용해 열 일곱 살부터 근무했어요. 해방 후 정식발령을 받았지요. 중·고등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해 국어교사로 47년 재임하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47년 재임은 최장 기간일 겁니다.
-요즘은 신문을 몇 부 보시나요.
▲날마다 가판대에서 두세 부를 사요. 틀린 내용은 어법에 맞게 빨간 펜으로 고쳐 우편으로 보내요. 날마다 우체국으로 출근해요. 이전에는 신문 열 부를 구독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글 바로 쓰기 운동을 하셨습니까.
▲1993년 교직을 퇴직하고 교과서와 신문, 잡지에 쓰인 일본어와 영어 투 표현을 바로잡고 우리말 바로 쓰는 운동을 시작했어요. 2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모 신문사에 빨간 펜 편지를 보냈더니 ‘밥 먹고 별 할 일 없는 사람이 있나 보다’고 했답니다. 나중에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그동안 빨간 펜 편지를 몇 사람에게 보냈나요.
▲정확히 몇 명인지 몰라요. 모 신문에서 보낸 편지는 2만 통이 넘고 받은 사람은 5000명 이상이라고 추산했더군요.
-감사 편지도 받으셨나요.
▲감사 편지를 보낸 이도 있고 ‘당신이 뭔데 남이 쓴 글에 손을 대느냐’고 항의 전화를 한 교수도 있어요. 모 교수는 답장을 다섯 번 했어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교수 시절인 2008년 ‘대한민국 헌법’이란 저서와 같이 감사 편지를 보냈고 성낙인 서울대 총장도 지은 헌법학 책과 감사 편지를 보내왔어요.
선생은 두 사람이 보낸 책과 감사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 주었다.
-헌법에 오류가 많다고 하셨지요.
▲헌법은 나라의 최고 법인데 문법에 맞지 않는 곳이 많아요. 몇 년 전 헌법 오류를 고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이란 책을 냈어요. 헌법 전문과 본문, 부칙을 어법에 맞게 고친 책인데 정부나 국회에서 아직도 바로잡지 않아요. 헌법 전문에 ‘전통에 빛나는’은 ‘전통으로 빛나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는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는 ‘각인이 균등한 기회에서’로 고쳐야 합니다.
제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으로부터’는 ‘에게서’로, 6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효력이 있다’, 10조 ‘모든 국민은 ~할 권리를 가진다’는 ‘~할 권리가 있다’,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다’로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왜 안 고칠까요.
▲답답합니다. 1999년 10월 법제처 국정감사에서 조순형 국민회의 의원(국회부의장 역임)이 문제를 거론했어요. 조 의원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을 인용해 “우리나라 헌법은 ‘졸렬한 문장의 경연장’”이라고 질타했어요. 조 의원은 “우리 헌법은 일어 투, 중국어 투, 영어 투 표현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한 한자어 투성이로 돌팔이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듯한 얼굴”이라면서 “정확한 문장의 전범인 프랑스 헌법과는 정반대”라며 시정을 요구했어요. 당시 법제처장은 한글학회와 고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초 취임사 작성에 참고자료를 청와대에 보냈다면서요.
▲군사정부를 끝내고 문민정부가 출범하기에 큰 기대를 했어요. 대통령 취임사부터 올바르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역대 대통령 연설문을 모아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 취임사 작성 책임자인 이경재 공보수석(방송통신위원장 역임)에게 보냈어요. 나중에 취임사를 보니 전혀 반영을 안 했어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출범 때도 자료를 보냈지만 달라 진 게 없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병을 퇴치하고 신한국을 건설한다’고 했지만 정착 잘못 쓰는 ‘한글병’은 고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취임사 가운데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오늘 탄생한 정부’로 ‘보다 자유롭고’는 ‘더 자유롭고’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국어 교육은 대학 입시나 취업 위주입니다. 제대로 국어 교육을 하지 않아요. 흔히 ‘정체성’이라고 하는데 ‘정체’로 해야 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국어 질서를 문란케 하니 통탄스러워요. ‘및’도 사용하지 말고 ‘과’ ‘와’로 써야 해요. ‘그’와 ‘그녀’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최현배 선생도 ‘우리말본’에서 우리말에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교과서도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이 많습니다. 잘못 쓴 내용을 책으로 묶어 한글학회에서 발표해도 정부가 안 고쳐요. 된소리인 ‘끼’는 올바른 말이 아닌 속어입니다. ‘끼’를 ‘광기’로 이해하면 ‘미치광이’입니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끼 있는 남자’ ‘끼로 사는 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우리 말 품위를 추락시키는 일이에요.
정부가 1992년부터 8년간 작성해 내놓은 ‘표준국어대사전’도 틀린 게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112억원을 들여 사전을 내놓았지만 졸속으로 만들어 어법에 맞게 다시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도 잘못한 자료를 모아 보냈지만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2004년 국회를 통과한 ‘국어기본법’을 ‘국어보호법’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 정화법’을 제정해 광고와 상표에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했고 어기면 처벌합니다. 캐나다 퀘벡주도 ‘언어정화법’을 제정했어요. 우리도 법을 개정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해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일본말만 쓰기’ 정책을 내세워 한글 사용을 금지했어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국어학자 40여 명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어요. 지금 우리말과 글을 보세요. 국적불명에 번역 투가 판을 쳐요. ‘국회선진화법’이 뭐예요. ‘선진국회법’이라고 해야지. 국회의원 300여 명은 무식자인가요. 문법에 맞지 않는 법안을 내놓으니 나라 망신입니다.
-좌우명은.
▲‘분수껏 살자’입니다. 사람은 욕심내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선생은 문법 책 다섯 권을 지었지만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일제 강점기 고향인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독학으로 공부해 열 여섯 살에 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해 열 일곱에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중·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1993년 서울여고에서 정년 퇴임했다. 2004년 문화관광부와 한글학회는 선생을 첫 번째 ‘우리 말글 지킴이’로 위촉했다. 방송위원회 방송언어 전문 심의위원으로 활동했고 2014년 외솔상을 받았다. 현재 한겨레문화센터에서 22년째 교열 강의를 한다. 인터뷰 두 시간은 기자에게 소중한 우리글 바로 쓰기 교육시간이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