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노벨상을 못 타는 이유

[데스크라인]노벨상을 못 타는 이유

올해도 우리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주위에선 일본과 비교하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21 대 0’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대놓고 냈다. 정부 예산으로 연구하는 출연연구기관에서 왜 노벨상 하나 못 타냐는 소리도 나왔다.

과학 분야에 주는 노벨상은 생리의학, 물리, 화학 세 개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가 주로 탄다. 노벨상 기본 취지는 인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것이다.

기술사업화에 매진하거나 응용, 원천연구를 주로 하는 출연연 연구원들이 받기는 애당초 어려운 상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20~30년 이상 한 우물만 팠다. 우리처럼 출연연 연구자들이 길어야 2~3년 연구해서 단박에 얻는 성과로 수상한 것이 아니다.

중국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낸 건 올해가 처음이다. 개똥쑥 추출물로 말라리아 특효약을 개발한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사실 개똥쑥 효능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자세히 나온다. 그렇다면 한의학연구원도 있는데 도대체 뭐했냐 묻고 싶겠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돈도 벌어야 하고 성과도 내야 한다. 이들이 술 깨는 약이나 단순한 건강보조식품 등을 개발하는 이유다.

지난 2011년 기초과학 수월성 연구를 기치로 내걸고 만들어진 기초과학연구원(IBS)은 5년째 셋방살이 신세다. 벌써 가동됐어야 할 가속기는 언제 완공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기초과학은 주로 대학에서 수행한다. 그러나 기초과학 예산은 교수들에게 ‘군대 건빵’이나 마찬가지다. 공평하게 분배해야 하는 식량과 같은 대상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예산 규모도 몇 천만원에 불과하다. 수월성을 외치지만 어느 한 곳에 예산을 몰아주면 정부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일본은 1949년 처음 노벨상을 받았다. 2000년 전까지 받은 상은 5건에 불과했다. 수상자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이후다.

1868년 메이지유신 정권 탄생과 함께 기초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니 100년이 좀 못 돼 처음 받은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1950년 6·25 잿더미에서 시작했다. 원자력연구원이 만들어진 것이 1959년이고, 실질적인 기초과학 투자는 1990년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25년 된 셈이다.

최근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을 찾은 아론 시카노버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교수는 노벨상이 과학을 하는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난 200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 결과는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경제 5개년 계획을 잘 세워 추진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젊었을 때 내놓은 과학자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많은 인용과정을 거쳐 이론으로 정착해 검증받아야 비로소 노벨상 수상 후보가 될 수 있다.

노벨상을 못 받는다고 성화를 부릴 것이 아니라 차제에 기초과학 분야 투자 및 R&D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과학을 하는 목표가 노벨상이 아니라, 인류 복지와 국민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