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샌드위치론’을 언급한 지 이제 불과 8년이 지났다. 우리가 일본의 기술경쟁력과 중국의 가격경쟁력 사이에 끼어 있는 현실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우리 경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엔저 정책에 힘입은 일본은 해외 시장에서 자동차, 가전, 부품소재 등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과 경쟁한다. 자본 집중과 기술 발전에 성공한 중국은 석유, 선박, 기계, 수송장비, 반도체 등 우리 주요 수출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중국은 반도체 분야, 특히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투자로 자국 내 시스템반도체 업체를 설립하고 이들 기술 개발을 지원함과 동시에 해외 시스템반도체 기업을 향해 적극적인 M&A에 나섰다.
우리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다소 정체시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메모리반도체 성공에 비하면 시스템반도체는 아직도 실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 이상 정부의 많은 R&D 자금을 중소기업에 투여했는데 아직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많이 언급된 요인은 연구개발 인력 부족이다. 신규 인력은 대학에서 충분히 공급하면 좋겠지만 최근 10년 이상 인력양성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부족한 인력은 중소기업에서 공급된다. 핵심 연구개발 인력을 놓친 중소기업에 지속적 기술 축적은 어려운 숙제고 정부 로서는 R&D 투자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워진다. 체계적 교육 시스템을 갖추기 힘든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대기업의 숙련된 연구개발 인력을 많이 모을 수 있는 방안과 환경이 필요하다.
핵심원천 기술부족도 주요한 원인이다. 단기 성과 지향적 정책은 기술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자본 투자를 어렵게 한다. 단기간 성과에 따라 흥망이 좌우되는 기업이라면 더욱 핵심기술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엔 시간도 자본도 부족하다. 전략적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 경쟁력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시스템반도체는 ICT 제품 핵심부품이다. ICT 제품 경쟁력을 위해서는 시스템반도체 수요자와 공급자 간 ‘갑’과 ‘을’ 관계보다 건전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제품 개발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사물인터넷 시대 시스템반도체는 지능형서비스를 제공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반도체다. 정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 결합으로 사물인터넷 시대 각종 지능형서비스를 구현하는 시스템반도체를 지능형반도체라고 정의하고 이를 19대 미래성장동력산업 중 하나로 선정해 육성하고 있다.
지능형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연구개발 인력의 질적 양적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 또 미래 ICT 제품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기술 개발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지능형반도체 산업에 관련된 기업, 정부, 대학, 연구소 관계자가 모여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건전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능형반도체 허브’가 필요하다.
다가올 미래에는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지금보다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으며, 지능형반도체 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통한 공존이 필요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격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국가 지능형반도체추진단장) yhson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