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아니면 말고’ 식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본지 보도(2015년 10월 5일자 9면 참고) 후 독자 반응은 한결같았다. 사실관계 확인 없이 소프트웨어 불법사용 혐의로 중소기업을 고발한 MS를 향한 비판과 함께 무차별 지재권 소송이 남발되지 않도록 무고죄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번 내용을 취재하며 세계적 기업의 업무 처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권리 주장에는 열을 올리는 반면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는 가볍게 여기는 이율배반적 모습 때문이다. MS가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근거는 소프트웨어 구매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PC나 서버를 사용할 것이고 이에 소프트웨어는 필수인데 고객 명단에 없으니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로 낙인찍은 것이다.
이는 허술한 차원을 넘어 황당한 논리다.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국내 모든 PC에는 MS 프로그램만 설치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는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존재한다. MS 제품이 유일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자사 고객이 아니라고 해서 불법 사용자라고 단정하는 MS 주장은 허탈하다 못해 실소를 자아낸다. 세계적 기업이, 그것도 법률 전문가와 상의한 일처리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충격이다.
실수였을 수 있다. 착오로 인한 해프닝으로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MS와 법무법인은 끝까지 책임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MS 측은 “I사가 PC를 렌털했기 때문에 구매 기록이 등록되지 않았다”며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소 취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피소 당한 I사 관계자는 “소 취하 후 미안하다는 얘기나 사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거대 기업 소송에 대응하느라 중소기업이 빼앗긴 시간적·경제적 비용은 보상받을 곳이 없다. 국내 기업을 상대로 아니면 말고 식 소송을 남발하는 글로벌 기업 행태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