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모두 팔면서 3년 6개월간 이어진 ‘불안한 동거’를 청산했다. 넥슨은 글로벌 진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이터널’ 등 게임 개발을 서두르는 등 본연의 비즈니스에 전력할 수 있게 됐다.
‘경영권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두 회사 분쟁은 상당 기간 여진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이번 지분 매각으로 약 6051억원을 확보했다. 주당 매각가격은 18만3000원으로 2012년 엔씨소프트 지분 인수 당시 금액인 25만원에 비해 낮지만 엔화 약세로 환차익을 계산하면 차익은 590억여원에 달한다.
넥슨은 이 자금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업인수(M&A) 등에 쓸 것으로 예상된다. 넥슨은 올해 초 엔씨소프트가 넷마블게임즈와 지분교환을 성사시키며 경영참여가 어려워지자 지분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김정주 NXC 대표는 엔씨소프트 지분 매각을 전제로 한 글로벌 기업 인수·지분투자 건을 올해 들어 수차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3년 반 기회비용을 날린 것을 감수하고 엔씨소프트 지분을 매각한 것은 최근 추진 중인 다른 딜이 성사에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넥슨은 올해부터 모바일게임 사업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북미 회사 지분 투자를 비롯해 중국에서 흥행한 게임을 수입하는 등 국내외 시장을 두드렸다. ‘도미네이션스’ 등이 북미, 유럽, 아시아 시장에서 골고루 흥행한 것이 청신호다. 넥슨은 도미네이션스를 만든 빅휴즈게임에 2013년 투자를 단행해 글로벌 흥행을 이끌었다.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김택진 대표는 이번 블록딜에 참여해 44만 주를 추가로 확보했다. 블록딜 이후 김택진 대표 지분은 11.98%까지 올랐다.
블록딜에 참여한 주체 중 5% 이상 엔씨소프트 지분을 취득한 곳은 영업일 기준 5일 이내 공시해야 한다. 10월 18일 현재까지 김택진 대표를 제외한 지분 매입 주체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텐센트 등이 거론되지만, 이들이 엔씨 지분을 획득했더라도 당장 김택진 대표 경영권을 흔들 가능성은 낮다. 텐센트가 3대 주주로 있는 넷마블게임즈는 지난 2월 상호지분 교환을 통해 엔씨소프트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리니지이터널’등 파괴력이 강한 신작이 출시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서두를 이유가 적다.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엔씨소프트와 넥슨 두 회사가 서로 신뢰를 잃은 것은 뼈아픈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경로를 종합해보면, 김정주 NXC 대표는 올해 2월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 협력이 발표된 직후 크게 실망감을 표시했다. 김정주 대표가 엔씨소프트 지분 매각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때부터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역시 넥슨이 올 초 경영권 참여를 선언하는 과정에서 넥슨과 김정주 대표에 신뢰를 상당히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는 지난해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추가로 취득한 이후 두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서로 한 번씩 모임에 불참하거나 연락이 안 돼 회동이 무산됐다.
둘 사이 갈등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총괄재단 서울 유치를 이끌어 낸 벤처기부펀드 ‘C프로그램’ 역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택진, 김정주, 이해진(네이버 창업자), 이재웅(다음 창업자), 김범수(카카오 창업자) 등 벤처 1세대가 만든 ‘C프로그램’은 5명 참여자들이 공동 출자한다. 서울대 선후배, 게임인으로 돈독했던 둘 사이 앙금과 어색함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은 “EA 인수 불발 이후 서로 겉돌았던 시간이 길어 서로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국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두 거인이 빠른 시일 안에 앙금을 털고 손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