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역 내 기업·기관 협력 기반이 된 산업단지 클러스터가 조성된 지 10년이 됐다. 산업단지가 1960년대부터 생산 기능 집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첨단 산업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구개발(R&D)과 정보공유 등 한 차원 높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클러스터 사업이 시작된 것이 10년 전, 2005년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큰 성과는 기술 개발로 평가된다. 같은 클러스터 내 기업·기관과 협력은 중소기업에 가장 취약했던 기술력을 보강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산업단지 내 클러스터 비율은 아직 20% 수준이다. 산업단지 5분의 1, 전체 제조업 생산 10분의 1 정도만이 클러스터 효과를 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혁신 클러스터에 해외 전문가들 관심이 높다.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클러스터 10주년이 되는 올해 세계 클러스터 경쟁력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도 뜻깊다. 지난 10년 클러스터 사업을 돌아본다.
◇클러스터란
클러스터 개념은 1990년대 학계에서 나왔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지역 역할에 주목했다. 1998년 포터 교수는 실리콘밸리처럼 한 장소에서 연계된 산업이나 기관 연결이 경쟁적인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클러스터 연구를 지원했다.
클러스터는 산업클러스터와 혁신클러스터,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산업클러스터는 특정산업 부문에 연관된 기업끼리 R&D, 부품생산, 마케팅에 이르는 산업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써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형태다.
혁신클러스터는 산업은 물론이고 지식 창출까지 포함한다. 대학, 연구기관, 법률·회계·금융 등 기업 서비스 지원기관이 기업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 네트워크로 시너지를 내는 방식이다.
◇산업단지에서 혁신 클러스터로
클러스터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지난 2004년쯤이다. 당시 제조업 생산 절반이 산업단지에서 나왔지만 산업단지는 생산 기능을 집적한 것에 불과했다. 자동차·조선·기계 등 주력 제조산업은 산업단지 의존도가 높지만 첨단 산업 기반이 되는 지식기반 서비스와 자체 R&D 역량은 매우 취약했다. 산업 뒷받침이 되는 교육 시설은 단지 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만큼 기업은 인재 양성이나 인력 확보에 애를 먹었다.
산업단지 경쟁력 약화는 기업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단계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정부도 기존 산업단지를 혁신클러스터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2004년에는 국정과제회의에서 산업단지 혁신 클러스터화를 논의한 이후 2005년 초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확정됐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됐으며 테크노파크, 전략산업기획단, 연구소,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개방형 네트워크 추진체계를 갖췄다.
1단계 사업이 완료되고 2단계 사업이 시작된 2009년에는 광역 경제권 중심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클러스터 역시 광역권별 거점 연계형 광역클러스터 형태로 발전했다. 2010년 4월 클러스터 사업 대상단지가 기존 12개 산업단지에서 광역경제권에 맞춰 193개 산업단지로 확대된 것도 이 때문이다.
클러스터 범위는 넓어졌지만 클러스터 사업은 더 작은 단위로 파고들었다. 산단공은 네트워크 조성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미니 클러스터를 구성하기도 했다. 미니클러스터는 업종별로 꾸린 소규모 산학연관 협의체다.
정춘옥 미니클러스터 간사는 “업종마다 미니클러스터 성격이나 형태가 다르게 운영된다”며 “산학연 관계자들이 함께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학습하는 모임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0년 성과와 한계는
인듐주석산화물(ITO) 코팅 유리 전문 유아이디는 미니 클러스터에서 소개를 받은 기업·대학과 함께 저반사 고투과 ITO 박막 코팅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고온에서 ITO 박막을 증착하면 소재가 열적 변형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이 회사는 충북대학교·유니플라즈마와 함께 새로운 공정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인덱스 매칭 설계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대모엔지니어링은 미니클러스터에서 품질 개선 성과를 일군 사례다. 2002년 80억원이던 매출이 2005년 200억원 수준으로 급격히 늘어나자 품질 관리 노하우가 절실했다. 필요성은 알면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당시 21개 기업이 참여한 스마트 허브 클러스터에서 품질 개선 방법론을 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혁신 클러스터의 가장 큰 성과는 중소기업 기술력 향상이다. 정부 R&D 과제에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중소기업일수록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업종·기술별 소규모 산학연 협의체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로써 한국형 클러스터 모델을 구축하고 지역 내 협력생태계를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함께 산학연 간 공동협력과제 위주로 자금을 지원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0년간 지원한 R&D 과제 중 90% 이상이 두 개 이상 기업이 참여한 공동협력과제다.
특허청에 따르면 클러스터 참여 기업 특허 출원은 일반 중소기업 대비 4.6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단공은 산업단지별로 특화산업 집적이 강화된 것도 간접적인 클러스터사업 영향이라고 평가했다. 2004년 최초 7개 시범단지 특화산업 비중은 63.6%였으나 2012년에는 78.4%를 보였다.
타 지역사업과 중복성 문제, 유사사업과 연계나 협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개선사항으로 지적된다. 자생적 클러스터가 아닌 공공 주도 클러스터다 보니 개방적인 성격이 부족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변 인프라를 강조했음에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출판, 전문디자인과 같은 지식 서비스 산업은 여전히 부족하다.
산단공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기존 생산기능 중심 산업단지에 연구개발 기능을 입주시켜 산학연 연계를 활성화한 것이 좋은 방향이었다”며 “산업단지 내 또는 시도 간 산업의 공간적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개방적 혁신체계를 보다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