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기기변경이나 신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지는 제게 묻지 마시고요. 저희는 번호이동만 받아요. 599요금제 180일 써주시면 20만원 빼드립니다. 그리고 사람이 몰려서 눈에 띄면 곤란하니 몇 바퀴 돌고 다시 오세요.”
지난 주말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금지하는 거의 모든 행위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이동통신 ‘성지’로 떠오른 신도림이 단통법 ‘사각지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불법보조금도 광범위하게 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입점업체가 부족해 텅텅 비다시피 하던 신도림은 어떻게 휴대폰 메카가 된 것일까.
◇“단통법 불만 터져나온 것”
이동통신업계는 신도림 테크노마트 사태를 ‘단통법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해석했다. 단통법 도입 초기부터 제기된 가장 큰 불만은 ‘싸게 파는 게 왜 죄냐’는 것이었다. 사는 사람도 ‘발품 팔아 싸게 사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이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정보를 공유하고 싼 곳을 찾아다니던 적극적 소비자가 이런 불만을 제기했다.
한 이동통신 대리점 근무자는 “한마디로 더 빼주겠다는데 빼주지 말라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불만 제기에 멈추지 않고 밴드 등 모바일 커뮤니티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며 자기들만의 시장을 만들었다. 현아(현금완납), 표인봉(페이백 초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 갤수육(갤럭시S6), 공책다섯권(갤럭시노트5) 등 은어를 써가며 감시망을 피했다. 녹취나 몰래카메라를 예방하려 금속탐지기를 동원하고 단속직원을 피하고자 재직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밴드는 워낙 폐쇄적이어서 소수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다. 위치를 의미하는 이른바 ‘좌표’를 알기 어려웠고 절차가 복잡해 이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 불만을 가장 잘 포착한 게 신도림 테크노마트다. 최근 들어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의미하는 ‘ㅅㄷㄹ ㅌㅋㄴㅁㅌ’는 이동통신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거운 검색어다. ‘여기 가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너도나도 신도림으로 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커뮤니티를 보면 ‘지방에서 상경한다’거나 ‘서울 부럽다. 지방은 정책(보조금이란 의미)이 없다’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왜 신도림인가…‘업자’ 모이기 최적 조건
이동통신업계는 집단상가 가운데 유독 신도림 테크노마트가 성지로 부상한 이유를 ‘풍선효과’에서 찾았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대형 집단상가 대부분이 자정노력으로 불법행위 근절에 나서자 이곳을 탈출한 판매자들이 신도림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강변 테크노마트는 최근 자정노력을 강화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에 가입하고 협회 지침에 따라 시장안정화 노력을 지속했다. 단통법 위반행위를 하면 자체 징계로 3일간 영업정지를 내렸다. 반복되면 퇴출도 강행했다. 고주원 강변 테크노마트 상우회장은 “10월에만 자체 영업정지를 내린 매장이 세 곳”이라고 말했다.
용산 전자상가 역시 상우회에서 자체 자정노력을 했고 협회도 개별 회원사에 불법행위 자제를 당부했다.
업계는 수도권 집단상가에서 ‘퇴출’ 당한 업자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신도림 테크노마트라고 본다. 우선 교통이 편리해 수도권과 지방 어느 곳에서도 방문이 쉽다. 경영이 어려워 공실이 많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임차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관리비만 내면 입점이 가능할 정도였다. 상우회가 없어 간섭도 덜했다. 최근 두 달간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입점한 휴대폰 판매업체만 40여개에 달한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도 소수 판매점이 불법영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신도림 전체가 싸잡아 비판을 당하면서 선량한 판매점까지 자칫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확산 우려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싼값에 휴대폰을 사려는 사람이 무리한 조건에 가입하면서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이 ‘개통 지연’이다. 길게는 일주일씩 개통이 미뤄진다는 것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규제당국 눈을 피하고자 일부러 개통을 늦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백(정상가로 구입하면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 피해도 우려된다. 휴대폰을 고가에 구입하게 한 뒤 나중에 현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단기월세를 내고 입점한 업체가 가게 문을 닫고 잠적해버리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통법은 ‘발품 팔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가격과 조건에 휴대폰을 살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명분이 있기 때문에 다소 규제가 강화되고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수의 이익을 위해 단통법이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발품 팔면 싸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살아나면 동시에 단통법 신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주원 강변 테크노마트 상우회장은 “신도림이 이슈가 되면서 내방고객이 급감해 내부 동요가 일고 있다. 우리는 자정노력을 하는데 다른 곳에서 불법이 계속된다면 아무도 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방통위에 이에 답변을 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만큼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