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MC 매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스토리지 업계가 바빠졌다. 경쟁사는 업계 선두인 EMC 매각을 사업 확대 호재로 삼아 활발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델은 기업 대상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670억달러(약 76조원)에 EMC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정보통신(IT)기업 인수 금액 가운데 역대 최고 금액이다. 델은 내년 5~10월에 조직 통합을 마무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인수 발표가 나온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경쟁사 견제는 이미 시작됐다. 멕 휘트먼 HP 회장은 “델과 EMC가 합병하면 두 회사 중복 제품 중 하나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고객은 18개월 후 시장에서 사라질 제품을 사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캇 디첸 퓨어스토리지 최고경영자(CEO)도 “양사 통합 성공 여부는 경영진, 포트폴리오, 파트너 관계 변화에 달려 있다”며 “향후 몇 개월이 아닌 몇 년간 변동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에 따른 사업주체 변경과 조직변화 등에 대한 고객과 시장 불안을 경쟁사 CEO들이 공략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배경에는 이번 EMC 매각이 곧 사업 확대의 기회라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EMC는 세계 최대 스토리지 기업이다. 세계 시장에서 매분기 3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며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쟁사 두 배가 넘는 매출로 독주 체계를 구축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이었지만 매각이라는 초대형 변수로 경쟁사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국내 2위 스토리지 기업인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측은 “델과 EMC 합병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통합이 추진되면 제품 라인업과 사업 조직에 변화가 예상되고 완료까지 어느 정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영업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EMC 고객 뺏기에 나선 곳도 있다. A사는 ‘EMC와 작별할 시간(It’s Bye, EMC)’이라는 자극적인 메시지를 주요 고객에게 전달하며 자사 제품으로 교체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델이 스토리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점도 경쟁사가 호재로 여기는 대목이다. 경쟁사의 흔들기와 시장 동요를 인식한 델도 EMC 인수 발표 후 주요 고객사에 이메일 등을 보내 ‘안정’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변화는 없으며, 지속적인 지원을 다짐하겠다’는 내용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