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기에 빠진 제조업 긴급진단에 착수했다.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 제조업 중심으로 해외 시장 동향과 국내 기업 경쟁력을 점검해 정책 방향을 도출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자동차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해양플랜트 등 분야별 업종 실태조사와 경쟁력 강화 방안을 연구한다. 담당 과별로 외부 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 개선과제를 마련한다.
정부가 긴급진단에 나선 것은 제조업 위기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은 1.6% 감소했다. 조사가 실시된 1961년 이후 제조업 매출이 역성장한 것은 처음이다.
수출 전선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달 주력 13개 품목 가운데 무선통신기기를 제외한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 등 12개 품목 수출이 작년 동기 대비 줄었다. 10월 13대 품목 수출 감소율은 18.1%로 올해 들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1~10월 누적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2% 모자란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철강은 해외 수요 감소와 경쟁 심화, 석유제품은 저유가 지속으로 수출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는 경기침체, 현지통화 약세 등으로 러시아·중국 등 신흥 시장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디스플레이는 주력 수출품목 LCD 공급과잉과 단가하락이 굳어졌다. 수출 효자 품목 반도체마저 메모리 단가 하락 여파로 과거 같은 성장세를 지속하기 어렵다.
정부는 제조업 위기에 대응해 자발적 구조개편을 유도했다. 지난해부터 기업 사업재편을 돕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금융 당국과 산업 주무부처가 직간접으로 ‘빅딜’을 유도했다.
구조개편이 위기기업 중심으로 급한 불을 끄는 작업이라면 업종 진단과 경쟁력 강화 방안 수립은 불이 날 소지를 없애는 차원이다.
산업부는 구조개편과 별도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서두른다. 연말 진단작업을 마치는 대로 분야별로 체질개선, 선진화, 인력 양성 방안 등을 마련한다. 타 산업 융합 확산(자동차), 에너지 절감 및 온실가스 저감(철강), 중국·일본 경쟁관계 분석(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해당 분야 현안을 다룬다. 산업부 관계자는 “제조업 위기론이 계속 제기돼 이를 해소하고자 산업 담당 과별로 현황 진단과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위기 배경에는 대내외 구조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부 정책 하나만으로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근본적 체질 개선을 이끌어내는 지속적이고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투자 활성화와 전문인력 양성”이라며 “기업이 적시적소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 걸림돌을 제거하고 첨단 제조업 인력을 기르는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품목 10월 수출 증가율 (단위:%, 증가율은 작년 동기 대비)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