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임피제 도입 `운용의 묘` 없나

[데스크라인]임피제 도입 `운용의 묘` 없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이하 임피제)는 왜 과학기술계 골칫거리가 됐을까.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임피제 도입기관은 공공기관 197개중 171개였다. 그러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은 20곳 중 11곳만이(부설기관 제외) 임피제를 수용했다.

임피제는 한국노동연구원 정의에 따르면 현행 정년고용보장 또는 정년 후 고용연장을 전제로 종업원 임금을 조정하는 임금제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또한 장기근무를 배려하는 방법으로 정의해 놨다. 일본은 임피제가 ‘시니어사원제도’라는 이름으로 도입돼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정년 연장형 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임피제 도입으로 기관 경쟁력이 강화되고, 인건비 부담은 다소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별도 정원 인정에 따른 인력증원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등과 비교해 임피제 도입 배경이 달라 우려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기관 내 세대 간 갈등이다. 임피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연구원들은 내년 연봉 자연승급분 임금인상률 50%가 삭감된다. 연봉 자연승급분 3% 가운데 1.5%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계산해도 20년 정년이 남은 연구원은 나중에 연봉 30%를 손해 본다. 퇴직금 누적에서도 피해를 본다. 과기계 임피제는 59~61세에 연봉 25%를 깎는 것을 담고 있다. 퇴직을 앞둔 연구원 입장에선 별 손해는 없기에,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관장은 기관장대로 한숨만 늘었다. 그간 추진되던 과학기술계 R&D체계 혁신도 갈팡질팡이다.

일부에서는 임기가 다 된 기관장 공모까지 멈춰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피제를 현 기관장이 깔끔하게 해결한 뒤 다음 기관장에게 넘기라는 정략적인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연구원 볼멘소리에 귀를 기울일 부분도 있다. 정년을 먼저 환원하라는 것이다. 출연연 정년은 IMF 구제금융 체제 이후 65세에서 61세로 줄었다. 임피제 적용 대상도 논란이다. 의사나 교수, 공무원은 임피제 적용 대상이 아니고, 연구원만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기계는 기관장 연봉도 경제사회계열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 과학기술계에 임피제를 적용해봐야 늘어나는 일자리는 300여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난 국정감사 때는 연구원 출신인 민병주 의원(새누리당)이 올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평균 연령이 75.6세라는 점을 내세워 임피제를 반대했다.

임금피크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타공공기관에서 출연연을 제외하는 방법도 있다. 출연연이 일반 공공기관처럼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공공R&D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제외하자는 논리다.

IMF 금융위기 때 단축됐던 정년을 65세로 환원한 뒤 임피제를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신 55세로 임피제 적용시기를 앞당기면 수지상으로도 정부가 손해 볼 일은 없다. 하지만 65세로 정년 연장한다는 것은 민간기업이나 타 직장에 비해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철밥통’ 논쟁이 재현될 수 있다.

제도는 사람이 만든다. 운용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과기계 임피제 도입이야말로 정부가 융통성을 갖고 노사 간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시험대’다.

박희범 전국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