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내 정보통신설비 공사 설계·감리 업무를 둘러싸고 전문성 공방이 벌어졌다.
전문 기술력을 보유한 정보통신 용역업자도 업무에 참여토록 한 ‘정보통신공사업법’ 개정이 직역 다툼으로 발목이 잡혔다. 기존 업무를 담당했던 건축사 반대가 거세, 개정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공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홍역을 앓고 있다. 건축사가 개정안을 반대하며 기존 법안 유지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설비 공사 설계·감리 업무를 해당 전문가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진입 장벽을 쳤다는 평가다.
현행법은 건축물에 포함된 정보통신 설비 설계·감리 업무를 건축사만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건축전기설비기술자나 전기 분야 기술사 등 정보통신 용역업자는 관련 설계와 감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서는 정보통신 기술력이 필요해 용역업자에 하도급을 주는 게 관행이다. 입찰정보 제공사이트 ‘전기넷’ 통계에 따르면, 건축물 정보통신설비 공사 발주 공고에서 설계 45.2%, 감리 47.2%가 입찰 참가자격에 정보통신용역업자를 포함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과 달리 전문성이 필요한 정보통신설비는 관련 기술사가 공사 설계·감리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다”며 “현장과 제도가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행법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의미다.
감사원도 지난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에 공사 설계·감리 업무 진입 규제를 완화하라고 통보했다. 정보통신 용역업자도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문을 열라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정보통신 공사도 전문성과 설비 기능과 품질 확보를 위해 전기·소방공사처럼 해당 분야 전문업자가 건축사와 유기적 협력관계를 이루며 수행해야 한다”며 “정보통신공사 설계·감리 시장 진입 규제는 저가 하도급 구조와 수직적 협력관계를 고착화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설계·감리 품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상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정보통신용역업자와 건축사가 함께 설계·감리 업무를 보도록 문턱을 낮춘다. 전문 기술력을 갖춘 정보통신 용역업자도 설계·감리에 참여해 시공 품질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불법적인 저가 하도급 문제도 개정안에 힘을 싣는다.
정보통신기술사 관계자는 “건축사가 자격 없는 정보통신 용역업자에게 불법적 저가 하도급을 줘 부실 설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적정한 공사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부실 시공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발의되자 건축사가 거세게 반발했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이달 초 ‘개정안에 대한 건의’ 공문을 미래창조과학부에 보내 정보통신공사업법을 현행대로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보통신 기술사가 건축 전문성이 떨어지고 건축주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건축사협회는 “건축물 설계 계약 시 건축주가 모든 기술 분야를 각각 발주하고 계약 맺어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건축사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 의원 발의안에 반대하며 개정 작업을 발목 잡을까 우려했다. 정보통신 용역업계 관계자는 “기득권이 있는 건축사 자격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정보통신용역업자도 설계·감리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한다”며 “전문성이 필요한 설비 공사가 직역 다툼으로 확대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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